[가정예배 365-11월 15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



찬송 : ‘나 행한 것 죄뿐이니’ 274장(통33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디모데전서 1장 15∼17절


말씀 : ‘거룩하다’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거룩하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하다’는 ‘구별하다’, ‘깨끗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소유로써 깨끗하게 사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합니다. 괴수라는 것은 못된 짓을 하는 무리의 우두머리입니다. 바울은 과거에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며 죽이는 일에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면서 ‘내가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라고 하면 수긍이 됩니다. 하지만 이미 디모데전서 1장 13절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라고 그 당시 자신의 모습을 다 밝혀 놓았습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한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문법적으로도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는 바울 서신 중에서 제일 나중에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주후 63∼65년경에 기록을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회심한 것은 주후 35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은 지가 3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 30년 동안 바울은 세 차례나 전도 여행을 하면서 온갖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그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애쓰며 수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죄인 중의 괴수라고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내 눈 속 들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들보는 집의 구조를 지탱해주는 아주 튼튼하고 커다란 목재입니다. 그것이 내 눈 속에 있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모르고 삽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자라면서 보이게 됩니다. 들보보다 더 큰 탐심 더 강한 질투 더 높은 교만이 보입니다. 이전에는 티보다 더 작게 보여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랄수록 너무 크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죄인 중에 괴수’라고까지 고백을 한 것입니다.

다행히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신 죄인이 여기 있다고 손들고 나아가는 것이 거룩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고 죄인인 것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주 앞에 나아갈 때 비로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기도 :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 눈의 들보를 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광석 목사(기쁨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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