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2일] 주님만으로 만족을 누리는 삶



찬송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430장(통 45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7∼11절


말씀 :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말씀을 읽게 되면 성령의 발자취가 아니라 자기 소원의 발자취를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말씀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욥기에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욥의 친구 빌닷이 욥에게 잘못을 뉘우치라고 다그치면서 한 말입니다. 욥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을 잃은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욥이 하나님께 벌 받아서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욥을 이렇게 꾸짖고 나무랐던 욥의 세 친구는 하나님께 크게 책망을 듣게 됩니다.

믿음의 초보에 해당하는 사람이 말씀을 오해하는 또 하나의 경우가 본문일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대체로 ‘좋은 것’이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재물, 건강, 권력, 명예, 성공입니다. 그래서 이런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구하고 두드리고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나 과연 ‘좋은 것’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들일까요? 6장에 보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이런 것들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뒤이은 7장에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물론이고 건강할 것, 성공할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신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앞뒤가 틀리게 말씀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단지, 우리가 오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1장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같은 본문인데 한 단어만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이 ‘성령’으로 대체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헬라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헬라인들에게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 반면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는데 유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은 것’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고대하던 메시아가 드디어 오셨는데 메시아가 오신 줄 모르는 유대인들에게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자신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하게 되고 찾게 되고 열리게 된다고 하십니다. 반드시 만나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제일 필요하고 제일 좋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뿐입니다. 그와 매일 매 순간 만나게 되면 우리 삶의 무게는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발걸음은 경쾌해질 것입니다. 주님만으로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 :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살게 하셔서 그와 늘 동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광석 목사(기쁨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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