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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시각각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행정명령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거리는 날로 황량해지고 자영업자들은 계속 문을 닫고 있다.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한지는 꽤 여러 날이 됐다. 500명 이상 모일 수 없다고 한 지 며칠이 안 돼 50명 이상 모일 수 없다고 했다. 필자가 사는 미국 뉴욕의 상황이다. 뉴욕에 이웃한 뉴저지는 현재 야간 통행금지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하나님만 아신다.

필자가 섬기는 퀸즈장로교회는 50명으로 숫자를 제한해 사순절 새벽예배를 계속 드리고 있다. 매일 예배를 드리며 미국 대통령과 정부, 한국 대통령과 정부, 각 나라의 의료진과 환자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이럴 때 교회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앞장서며 집에 머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왜 안 듣겠는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책임과 사회의 안전을 아우르는 의견임에 동의한다. 이런 위기의 때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있고, 의료진의 생명을 건 역할도 있다. 그리고 교회의 역할도 분명하다.

하늘의 문을 두드리며 자복하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는 교회의 독특한 역할이다.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겠지만, 정부의 방침을 준수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키심을 구하며 모여서 기도하는 길을 간다.

아무튼, 숫자 제한 때문에 예배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다. 성도들은 너무나 예배를 그리워하고 있다. 눈에는 주렁주렁 눈물로, 목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예배를 갈망한다. 그렇다. 예배는 갈망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예배를 별 갈망 없이 드린 적이 많았는데, 갈망이 없는 자는 예배자로 적합지 않음을 이번 기회에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

예배자라면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영광스러운 예배에 갈망으로 응답하며 나가야 한다. 영혼의 갈망은 물론 육체의 앙모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

예배는 갈망이다. 특별히 무엇을 갈망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편재(遍在)하신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임재하시지 않으신다.

예배드리면서 나를 갈망할 수 있다. 내가 만족할 예배, 내 필요를 충족하게 해줄 예배, 나를 위로할 예배를 갈망한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예배의 갈망은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임재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간이 “쉭쉭”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쥐어짜면서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만들려고 조작하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전심으로 갈망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임재는 땅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말씀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성례 가운데, 그리고 모든 예배 순서 가운데 하나님은 다양하게, 강력하게, 따듯하게 임재하신다. 그 임재는 나를 압도해 반드시 나의 생각을 충만케 하고 나의 감정을 뜨겁게 하며 나의 의지를 새롭게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나의 전(全) 존재가 ‘업그레이드’ 되므로 명백히 알 수 있다.

복음이 확실하게 이해되고 말씀에 찔림이 크고 회개가 쏟아지고 감사가 넘치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이 전개된다. 하나님의 임재는 특정 교회와 어떤 시대의 큰 부흥을 통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갈망하는 것이다.

<미국 퀸즈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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