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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망상에서 바다를 보고



망상해수욕장에서 동해를 보았다. 망상(望祥)은 상서로운 기운을 본다는 뜻이니 새해를 맞아 상서로운 일출을 보기에 알맞다. 날이 흐려 일출을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탁 트인다. 바다는 금도(襟度)를 넓힌다. ‘맹자’에 “공자가 동산(東山)에 올라가 보고 노(魯)나라를 작게 여기고 태산(泰山)에 올라가 보고 천하를 작게 여겼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웬만한 물은 물이라 하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유학한 사람에게는 웬만한 말은 말이라 하기 어렵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본 것이 커야 생각이 커지는 법이다.

16세기 후반의 학자 홍성민(洪聖民·1536∼ 1594)만큼 바다를 많이 본 조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홍성민은 자신이 바다를 구경한 체험을 ‘관해록(觀海錄)’이라는 글에 자세히 담았다. 20대 중반 황해도 연안에 가서 처음 바다를 보았다. 그 드넓음에 놀라 경탄을 금치 못하고 천지에 서해만큼 큰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30대 후반 북경으로 가는 길에 발해를 보았는데 거대한 파도가 서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고, 다시 40대 초반 영덕에서 동해를 보니 그 이전에 본 것은 바다도 아니었다. 그 후에도 진해, 동래, 남해도 등지에서 남해를 보고 인천과 안산으로 가서 서해를 보았다. 그러고도 바다 구석구석을 보지 못한 것을 한하였다. 예전 본 것에 새로 본 것을 더해 흉금을 더욱 크게 하고 싶었고, 좁은 속을 넓히고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어 다시는 조잔한 인간이 되지 않고자 하였다.

그래서 50대 중반 경상감사에 임명되자 아예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 남해의 진주까지 조선의 반 바퀴를 돌면서 바다를 보았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었는데 유배길조차 북해를 보는 기회로 여겼다. 동해와 서해, 남해, 북해를 모두 본 후 홍성민은 무한한 포용력이 바다를 거대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다라는 물건은 과연 크다. 산은 때로 무너지고 땅은 때로 갈라지지만 바다는 흐르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는다. 큰 가뭄에도 줄어들지 않고 홍수에도 불어나지 않는다. 천지와 산악을 뒤흔들면서 만고의 세월 그 큰 것을 유지하고 그 큰 것을 지켜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큰 이유는 여러 강물과 시내를 삼키고 모으기 때문이다. 똑똑 떨어지고 졸졸 흐르는 물부터 고불고불 실개울까지, 아무리 꺾어져도 반드시 동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 바다는 이를 받아들여 스스로 그 큰 것을 이루니, 이것이 바다라는 것이 된 까닭이다.”

홍성민은 이 거대한 바다를 흉중에 담아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다를 보는 뜻이라 하였다. 거대한 바다는 좁아터진 인간의 스케일을 크게 해준다. 여기에 더해 18세기의 문인화가 이인상(李麟祥·1710∼1760)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 바다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물 중에 바다보다 성대한 것이 없어 아무도 그 끝까지 가본 이가 없다. 바다를 구경하지 않으면 천지의 거대한 문채를 보지 못해 물정을 끝까지 헤아릴 수 없고, 바다를 건너보지 않으면 세운(世運)의 험이(險易)를 경험하지 못해 인력(人力)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볼 수 없다.”

바다를 구경해야 세상사 물정을 알게 되고 바다를 건너보아야 세상사 처리하는 방도를 알게 된다. 새해 바다를 찾는 뜻이 여기에도 있으니, ‘새해’가 ‘헌해’가 되기 전에 바다로 여행을 떠날 일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장흥효(張興孝·1564∼1633)는 영덕의 관어대(觀魚臺)에 올라 동해를 보고 “화산(華山)에 오른 이에게 웬만한 산은 산이 아니요, 바다를 본 이에게 웬만한 물은 물이 아닌 법. 오른 곳이 더 높아야 몸이 더욱 높아지고, 본 것이 더욱 지극해야 마음이 더욱 지극해진다네. 높은 곳에 올라야 보이는 것이 지극해지니, 이로써 천지의 조화를 함께하리라(登於華者難爲山 觀於海者難爲水 所登益高身益高 所觀益至心益至 所登高時所觀至 從此庶可參天地)”라는 멋진 시를 지었다. 이 시를 들어 새해를 축원한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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