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예레미야의 예언



본문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생명의 위협을 받고 감옥 뜰에 갇혀 있으면서도, 유다를 향해 하나님 말씀을 예언하고 있는 예레미야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은 유다의 높은 관리들은 그가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않고 멸망을 예언함으로써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과 백성의 사기까지 떨어뜨렸다고 생각합니다. 관리들은 시드기야 왕을 찾아가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고 고발합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관리들도 고발할 만합니다.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예언자라면, 나라와 민족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군인들과 백성에게 힘을 주는 말로써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오히려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하면서 적군에 항복해야 산다고 하니, 관리들 입장에서는 아군에 피해를 주고 적군에 도움을 주는 배신자로 보였던 것입니다.

나라가 기울어 질대로 기울어진 유다의 왕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는 관리들의 말을 듣고 거절하지 못합니다. 결국 예레미야를 붙잡아 왕궁 호위 부대가 모여 있는 마당의 진흙 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모습 속에서 말씀 전하는 사람의 할 일과 마음가짐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자 합니다.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면 칭찬을 받기 쉽습니다. 때로는 존경과 박수를 받기도 하고 지위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세상 속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표현하고 전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기대에 맞지 않더라도 전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플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을 통해 그 사회와 공동체가 결국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이러한 모습은 신약 속 바울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떠나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이러한 부르심은 예레미야나 바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전 12:11) 말씀은 찌르는 채찍과 같습니다. 그리고 선포되는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아야 합니다. 삐딱한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잘 박힌 못처럼 잡아 주십니다.

단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은 말씀으로 잘 살펴보고 상대방은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내가 듣고 깨닫게 된 말씀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게 되면 율법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말씀으로 심판할 권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내게 비출 때 그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찌르는 채찍 같고, 잘 박힌 못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여러분에게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조영성 목사(일산능력교회)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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