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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세욱] 쇼는 계속돼야 한다



1976년 10월 7일 영국 록그룹 퀸이 싱글 앨범으로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를 발매했을 때 유명 음악잡지 NME의 평가는 이랬다. “전 세계 축구팬들을 겨냥한 것 같은데 당장은 관중석에서 반짝 인기를 얻겠다. 헛짓거리에 머리를 잘 썼다.”(책 ‘퀸-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 중에서) ‘반짝 인기’와 ‘헛짓거리’가 될 거라던 이 노래는 42년이 지난 지금 축구뿐 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응원가가 됐다.

퀸의 노래는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특히 스포츠에서 존재감이 엄청났다. 미국의 빌보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등이 100대 혹은 10대 스포츠 음악을 선정할 때마다 ‘위 아 더 챔피언스’나’‘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는 단골 1위 후보다.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Another one bites the dust-또 한 명이 쓰러지네)’는 토너먼트 경기에서 상대 팀이 탈락할 때 등장하곤 한다.

기자는 대학 시절인 90년대 초 주한미군 방송 AFKN에서 미국프로농구(NBA)를 즐겨 봤는데 코트에서 울리는 ‘위 윌 록 유’를 흥얼거리며 시카고 불스를 응원했다. 퀸을 모르는 중학생 딸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함께 보자고 하자 흔쾌히 동행했다. 이유인즉슨 학교 운동회 응원가로 쓰인 ‘위 윌 록 유’가 나온다고 해서다.

퀸의 노래들이 스포츠팬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따라 하기 쉬운 박자, 신명나는 리듬, 마음을 흔드는 가사가 주로 거론된다. 하지만 퀸이 지향하는 통합 정신을 꼽는 이도 적지 않다. 가수 고(故) 신해철은 ‘위 아 더 챔피언스’를 “승자는 물론, 패자도 챔피언이라는 위안을 주는 노래”라고 규정했다. ‘인도 출신 보컬과 영국의 엘리트 멤버들이 사회통합 요구에 호응한’ 퀸의 목적의식을 보여주는 곡으로도 해석했다. 성별·계층과 상관없이 한마음으로 열광하는 스포츠의 특성과 일치한다.

올해 국민을 하나로 만든 대표적 스포츠 대회는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국민은 대표팀이 ‘상대를 흔들고 이기기를(위 윌 록 유)’ 바랐지만 패하더라도 ‘우리가 바로 챔피언’이라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영미 신드롬’을 일으킨 ‘팀 킴’ 여자 컬링과 남북 단일팀인 여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땀과 눈물에 모두가 감동했다. 평창올림픽 현장은 퀸의 음악이 주는 의미에 가장 부합한 공간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상영된 때와 맞물려 평창 종목들의 내분과 열악한 실상이 알려진 것은 역설적이다. 가족 같다던 감독진이 갑질·전횡을 일삼았다고 터뜨린 팀 킴의 폭로는 충격을 안겼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캐나다인 세라 머리 감독의 지도 하에 남북이 하나 돼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난 뒤 선수들의 항명으로 감독이 물러났다. 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딴 봅슬레이·스켈레톤 팀은 올림픽이 끝난 뒤 연습장이 폐쇄돼 훈련도 못하고 있다. 대기업의 장비 지원도 끊겼다. 챔피언으로 불렸던 이들이 사실은 지독한 속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던 셈이다. 성적 지상주의,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의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평창 올림픽의 의의는 이대로 퇴색되고 마는 걸까.

91년 리더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기 전 발매된 퀸의 마지막 싱글은 ‘The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돼야 한다)’이었다. 제목대로 퀸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특히 밴드의 도전정신,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퀸의 스포츠 음악은 스포츠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24일 일부 영화관에서 열린 머큐리 사망 27주기 추모 상영제는 전석이 매진됐다.

국민에게 희망과 기쁨을 준 평창올림픽의 감동도 멈춰선 안 된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자세로 환부를 도려내는 체육계의 환골탈태,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위한 지원 방안이 절실하다. 스포츠가 국민통합과 사회발전에 미치는 효과를 안다면 더욱 서둘러야 한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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