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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정승훈]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며 Ⅱ



8년 전 이맘때 캐나다 밴쿠버에서 동계 패럴림픽을 취재했다. 썰매에 의지한 이들이 그토록 빠르고 격렬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아이스슬레지하키(파라아이스하키의 옛 이름)를 보며 알았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수 있는 휠체어컬링의 매력도 처음 맛봤다. 세계 3대 스키장 중 하나라는, 휘슬러 스키장의 설원을 누비는 장애인 스키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신선했다. 열흘 남짓한 취재 기간 중 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2010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폐회식이 열렸던 밴쿠버 BC 플레이스 스타디움 입구의 모습이었다.

개선문처럼 장식된 그곳에는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달리는 마라토너 테리 폭스의 사진과 사연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10리를 뛰어도 끄떡없을 것만 같고, 100리를 걸어도 지치지 않을 것만 같은 꽃다운 나이 열여덟에 골육종 진단을 받고 무릎 위 6인치까지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수술 후 의족에 의지한 채 1년 넘게 입원해 있던 그는 자신처럼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 특히 어린이 암 환자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휠체어를 탄 채 42.195㎞를 완주한 사람의 이야기를 잡지에서 읽은 그는 암 연구기금 마련을 위한 캐나다 대륙 횡단 마라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80년 4월 12일.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주 세인트존스의 바닷가에서 스물두 살이 된 그는 의족을 단 오른쪽 발을 내디뎠다. 8000여㎞를 횡단하는 도전이 시작됐다. 한 발짝 한 발짝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조심스레 걷는 것만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족을 단 채 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의족과 맞닿은 다리의 절단 부위에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왼발과 의족으로 6개 주를 통과하자 힘겨운 그의 마라톤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143일간 매일 마라톤을 하듯 평균 37㎞를 달렸다. 그러나 그는 144일째 되던 날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암이 재발했고, 암세포가 폐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병상에서도 “내가 끝내지 못하더라도 마라톤을 이어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몇 개월 후 그는 숨을 거뒀다. 캐나다인들은 그를 장애인 영웅으로 추앙한다. 그의 달리기가 장애인의 도전정신과 나눔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장애인 스포츠의 저변도 이후 크게 확대됐다. BC 플레이스 스타디움에 추모하는 상징물을 세운 이유는 그의 도전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의 뜻은 캐나다를 넘어 세계로 확산됐고 매년 9월이면 세계 곳곳에서 ‘테리 폭스 달리기대회’가 열린다.

8년 전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며’라는 칼럼을 통해 그를 소개하면서 동계 패럴림픽에서 새로운 스포츠 스타가 출현하기를 소망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스포츠 확산의 촉매가 될 것이라고, 거리나 체육관으로 나서지 못한 채 집에 머물러 있는 장애인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소망은 아직 미완성이다. 한국의 장애인들에게 스포츠는 여전히 먼 나라 얘기다.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도, 특성에 맞게 짜인 프로그램도 찾기 어렵다. 지난해 8월 인천에서 문을 연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는 그런 점에서 퍽 고무적인 장소다. 인천 외 지역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전용 체육센터의 확대가 절실하다.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패럴림픽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내 장애인 스포츠 확산을 위해 더없이 좋은 기회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조바심마저 든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패럴림픽 중계에 소극적이었던 지상파 방송사들이 중계 시간을 다소 늘렸다고 한다. 연출되지 않은, 장애인들의 현실과 도전을 확인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콘텐츠는 없다. 더 많은 주인공, 더 많은 이야기,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영웅이 우리 앞에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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