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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조민영]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솔직히 고백한다. 1월 29일 오전 서지현 검사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를 접한 첫 감정은 충격이나 흥분보단 냉소에 가까웠다.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의 감정이었다. 검찰 출입 여기자로서 공감이 클 것이라는 데스크의 판단과도 어긋났다. 기사를 처리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의무적인 경계심이 있었을 터다. 서 검사 주장에 검찰 인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엮여 있어 애매하다는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다 감안해도 지독히 차가웠던 당시 심경은 풀이가 어려웠다.

한 달이 지났다. 가장 공고할 것으로 여겨졌던 검찰 조직을 상대로 한 현직 검사의 미투는 문화예술계로 뻗어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연일 터져 나오는 미투의 내용은 괴로울 정도로 끔찍하다. 그런데 이번엔 다행한 감정이 밀고 올라온다. 한 여성검사와 얘기를 나눴다. 이윤택 등의 추잡한 행각이 드러나며 한참 공분을 살 때다. 검찰 내에서 진행되는 성추행조사단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 것인지 등에 대해 함께 걱정하던 그가 말했다. “그런데 (지금 미투 파장을 보면) 뭐라 해도 서 검사 미투는 충분히 역할을 한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도 ‘다행’이었다. 서 검사 폭로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애매한 반응을 내놨던 그였다.

그제야 한 달 전 냉소의 실체를 깨달았다. 두려움이다. 서 검사의 미투가 반짝 회자되다 묻히거나, 오히려 그를 향한 공격으로 돌아서거나 이상한 논란을 생산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벽을 쳤다. 내가 고발의 주체도 아닌데 두려워 벽까지 친 건 결국 나 역시 피해자 영역에 있으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의 편을 들었다 나도 그와 같이 ‘피곤한 인물’로 취급받을까 두려웠던 것도 같다. 문제 삼았다 오히려 상처받고 까발려지고, 논란만 일으키고 끝나는 직간접적 경험이 너무 많이 쌓여왔다면 변명이 될까.

지금의 미투 행렬 속에서도 곁가지 논란은 이미 시작됐다. 서 검사 미투 이후 검찰 안팎에서는 ‘인사 얘기는 하지 말지’라는 얘기가 중론을 이뤘다. 성추행 피해는 너무나 안타깝지만, 인사 얘기가 본말을 뒤집을 것 같다는 걱정을 전제한 채.

문화예술계에서도 슬슬 허위사실 유포, 무고 등의 반박이 나오기 시작한다. 실제 수많은 미투 폭로 중 일부는 무고로 결론날 수도 있다. 그런데 분명히 할 것은 이런 논란의 여지는 비단 미투 사건뿐 아니라 원래 모든 갈등 관계에 다 있다는 점이다. 갈등관계에 있는 이들끼리 해결하지 못해 밖으로 표출되는 ‘폭로’는 그 단어 자체가 애당초 일정부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곁가지 논란이 미투의 본질을 폄하하는 쪽으로 흘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욱이 미투는 감독과 배우, 선생과 제자, 상사와 부하처럼 둘 사이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관계거나, 공개적인 절차를 밟는 일 자체가 두려워 묵혀왔다 폭로로 표출된 경우다. 무엇보다 성추행, 성폭력의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공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괴로운 일이다. 서 검사 미투를 보며 기자 초년병 시절 얼굴도 몰랐던 직장 내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페이스북 창을 열었지만, 당시 상황을 묘사할 단어 하나도 쓰지 못했다. 13년이 지난 일이고 가해자 징계까지 갔던 일인데도 다시 언급하는 과정이 거북했다. 결국 ‘#미투’ 해시태그만 달고 말았다.

미투는 결국 피해자가 다시 ‘폭로의 부담’을 지는 과정인 셈이다. 지금의 미투 행렬이 더 많은 가해자를 색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피해를 당했으면 다른 고민 없이 문제를 제기해 가해한 사람이 처벌받는 일이 자연스러워져 피해자가 ‘폭로의 짐’을 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미투했어도 괜찮았다”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미투 한 달, 떠들썩한 수많은 폭로 속에 분명히 기억됐으면 하는 서 검사의 한마디를 다시 한 번 공유하고 싶다. 당신이 당했던 그 일은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조민영 사회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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