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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김재천] 트럼프의 이너서클과 빅터 차



“전문가들은 뭘 알아서가 아니라 물어보니 답한다(not because they know, but because they are asked).”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의 말이다. 그만큼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꽃이다. 자연과학만큼은 아니라도 견고한 이론과 실증적 자료로 객관적인 논거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 역시 사회과학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론과 자료가 과학적이지 않고 논거 또한 주관적인 경우가 많다. 노벨 경제학상은 있어도 노벨 정치학상은 없다. 필자는 정치학자이고, 정치와 연관된 갖은 난문(難問)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며칠 동안 주한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가 낙마한 이유와 ‘코피작전’ 감행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견고한 이론과 기자들이 접할 수 있는 생생한 정보는 부족하지만 답해 보기로 하자.

우선 빅터 차의 낙마. 느슨한 ‘관료정치모델’로 어느 정도 설명 가능해 보인다. 정부부서 간 상호작용과 경쟁으로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 틀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 외교정책 과정의 특징 중 하나는 백악관에 포진한 대통령 측근, 이너서클(inner circle)의 약진이다. 1939년 구조조정법으로 발족한 대통령실은 날로 강대해졌고, 1947년 국가보안법에 의거해 대통령실에 창설한 안전보장회의(NSC)는 대통령 이너서클의 거점 역할을 해 왔다. NSC는 대통령 자문기구이고, 논의사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헌법에 의하면 국무부가 미국 외교를 관활하고 국무장관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외교자문역을 수행하게 돼 있다. 국무장관은 장관 중 서열 1위이고, NSC를 총괄하는 안보보좌관은 직제상 대통령의 스태프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역싸움’에서 국무장관이 안보보좌관에 밀린 경우가 허다하다. 비근한 예로 부시 행정부 당시 콜린 파웰 국무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보좌관에게 밀렸다. 레이건 행정부의 알렉산더 헤이그, 카터 행정부의 사이러스 밴스 등 쟁쟁한 국무장관 역시 영역싸움에서 패했다.

물론 영향력 있던 국무장관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힘이 셌던 이유는 대통령 이너서클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너서클에서 이탈해 국무부의 위상 강화와 이익 대변을 도모하려는 순간 대통령 눈 밖에 나기 일쑤다. 틸러슨 현 국무장관 역시 국무부 수장의 역할에 충실하려 했고,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너서클에서 멀어져 버렸다. 워싱턴 정치경험이 일천한 대통령일수록 이너서클에 더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고, 특히 트럼프 이너서클은 외교적 경험과 학문적 식견보다 충성도가 훨씬 중요하다.

빅터 차는 그가 속한 CSIS의 존 햄리 소장이 추천해 틸러슨이 밀었던 인사다. 틸러슨이 밀었던 인사가 낙마한 건 처음이 아니다. 부장관으로 밀었던 엘리엇 아브람스 전 차관보 역시 최종단계에서 낙마했다. 빅터 차는 외교와 제도의 틀보다는 물리력의 투사 및 투사의 위협을 통한 국제관계 관리를 상대적으로 더 선호해 온 공화당 성향이다. 본인도 주한대사 자리에 열의를 보였고 “화염과 분노”와 같은 발언이 돌출했을 때 대북 압박책의 일환으로 유효하다며 트럼프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강력한 압박과 제재로 북을 비핵화의 길로 유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 즉 ‘매파 개입론(hawk engagement)’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대체적으로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트럼프 이너서클의 충성도 테스트에서 고배를 마셨다. 코피작전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충성도를 가늠하기 좋은 항목인데, 빅터 차는 특유의 논리로 장단점을 또박또박 설파했다. 트럼프 이너서클은 이런 학자 스타일을 싫어한다. 결국 정책적 차이라기보다는 충성심을 의심받아 밀려났고, 검증과정에서 그를 괴롭혔던 고액 강연료, 기부금 및 로비자금, 처가의 한국 내 사업 등은 낙마의 최종 구실이 됐을 것이다. 빅터 차의 낙마를 코피작전 걸림돌 제거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다음 번 칼럼의 주제다.

김재천(서강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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