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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하윤해] 실패할 수 있는 자유



태어나자마자 입양됐다. 학교에 입학해서는 말썽꾸러기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의자 밑에 폭음탄을 설치해 터뜨렸다. 똑똑했으나 예민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마리화나와 마약류의 일종인 LSD에 손을 댔다. 양부모는 사랑과 인내로 그를 지켰다. 소년이 입양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을 때 양부모는 “너는 버림받은 게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 소년은 커서 세계적인 기업 애플을 세웠다. 2011년 10월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 얘기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공통점이 많다. 최첨단 기업을 일으켰고, 엄청난 부를 쌓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대학을 중퇴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잡스의 양아버지는 기계공, 중고차 세일즈맨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생모는 입양 직전, 갓 태어난 잡스의 대학 진학을 부탁했다. 양부모는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잡스를 대학에 보내려 애썼다. 고집불통이었던 잡스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 학비가 가장 비싼 대학 중 하나인 리드(Reed) 대학이 아니면 안 가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1학기만 다니고 리드 대학을 그만뒀다. 그는 훗날 “노동자인 부모가 평생 번 돈이 대학 학비로 들어가는데 죄책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저커버그는 2017년 5월 25일 미국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는 “내가 졸업 축사를 마치면 하버드 대학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끝마치는 것이 된다”는 조크를 던졌다. 하버드 대학 중퇴 경력을 빗댄 것이었다. 저커버그는 2학년 때인 2004년 2월 페이스북을 개발하고는 곧 자퇴했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 2학년을 마쳤던 1975년 대학을 떠났다. 게이츠는 “일이 잘못되면 언제든 하버드 대학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나는 공식적으로는 휴학생 신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국에는 대학 졸업장이 없는 억만장자가 많다. 오라클 창업자인 래리 앨리슨과 델 창업자 마이클 델도 대학 중퇴자다. 혁신 성장을 이끄는 컴퓨터와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학 중퇴자 출신의 억만장자들이 몰려 있는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특히 게이츠와 저커버그는 요샛말로 금수저형 천재였다. 게이츠의 부친은 저명한 변호사였고, 저커버그의 부모는 의사였다. 부모의 재력과 관심은 이들의 천재성이 일찌감치 빛을 발하는 데 거름이 됐다.

하지만 이들의 영웅담이 천재성과 부모의 지원, IT 업계의 특수성만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사회적 여건도 중요한 요소다. 잡스, 게이츠, 저커버그는 대학을 뛰쳐나왔으나 ‘낙오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 조금만 삐끗해도 루저로 전락할 수 있는 한국과는 환경이 달랐다. 한국 교육은 잡스 같은 혁신기업 창업자를 낳기보다 혁신기업의 직원을 생산하는 시스템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 많다고 해서 우리 젊은이들의 도전의식이 낮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실패에 대비한 매트리스가 깔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안정된 길을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대학 졸업 예정자가 대학 졸업자보다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졸업을 늦추는 대학생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든 사회가 이상한 것이다.

새해가 시작됐다. 아직도 취업을 못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기 힘든 패배자가 되고, 그래서 도전에 주저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사회적 매트리스를 젊은이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저커버그는 하버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공은 실패할 수 있는 자유에서 출발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일 뿐이다.

하윤해 정치부 차장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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