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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작은 자에게서 주님 모습 보겠습니다



뇌병변 장애로 인해 전신마비로 누워있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주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통해 나타나신 주님은 마치 베드로에게 물으시듯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습관적으로 고백해 왔지만, 대면하여 물으시는 주님 앞에 직답할 수 없었던 나는 이렇게 말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주님 아시잖아요….” 나는 그날 심하게 일그러진 아들의 얼굴을 통해 ‘지극히 작은 자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후 중증장애를 가진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는 소문이 나서인지, 장애로 인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기들이 하나둘씩 나에게로 왔습니다. 어느 날은 대문 앞에서, 또 다른 날은 담벼락 밑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기의 현실에 아파하면서도 나는 그때마다 그들을 통해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주사랑공동체(베이비박스)에서 나는 지금도 매일같이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2017년 한 해 동안 220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를 찾았고, 그들의 엄마는 대부분 나이 어린 미혼모였습니다.

2000년 전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신 주님은 탄생의 장소도 비천했지만, 과정 또한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어찌 보면 미혼모라 할 수 있는 여성에게서, 또 어찌 보면 불륜이라 할 수 있는 과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오신 것을 오늘날 우리는 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이해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지극히 작은 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셨습니다(마 25:37∼40).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강림절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이 시대의 마음이 예전 같지는 못하다지만 여전히 성탄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계절에 스스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어디서 주님을 찾고 있으며 누구를 통해 주님을 만나려 하는가?’

더불어 나는 이 시대 누가 지극히 작은 자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사람의 생명일진대, 갓 태어난 아기, 중증장애인과 같이 자신의 생명조차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수 없는 이들이 지극히 작은 자가 아닌가?’

지금도 수많은 아기들이 부모의 품을 벗어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중증장애인이 힘겨운 호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오게 된 과정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분명 주님입니다. 주님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주님의 호흡이 가늘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 위험을 보지 못하고 그 신음을 듣지 못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어둡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주님이 오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탄을 알리는 밝은 빛이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했던 것 같이, 동일한 빛이 우리를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로 인도하기를 소망합니다. 누구보다도 나에게 이 빛이 밝게 비추어 지극히 작은 자들 속에 드러난 주님을 뚜렷하게 보길 소망합니다.

이종락 목사(주사랑공동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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