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특별 기고-이근용] 발달장애인 위한 K-PACE



1946년 가을 대구의 한 공동묘지 부지에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10명이 모였다. 5살 꼬마부터 60세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붉은색 벽돌을 조심스럽게, 부지런히 나르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다 이 광경을 목격한 보병대 중령 한 명이 뭘 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 건물을 짓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중령은 바로 부대로 돌아가 불도저를 끌고 나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그에게 다가가 감사를 표시했다. 바로 대구대학교의 설립자 이영식 목사였다.

공동묘지 땅 4만㎡를 대구시로부터 증여받았지만 공사비가 없어 장애인들이 직접 벽돌을 날랐던 대구맹아학교는 이렇게 탄생했다. 대명동 캠퍼스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5개 특수학교가 한곳에 있다. 바로 시각장애·청각장애·지체부자유·지적장애·정서행동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교육시설이다.

이 목사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일경에 고문을 받다 청력을 잃었다. 이후 장애의 아픔을 공감해 평생 아프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목사가 되자마자 한센병 환자들이 살던 애락원에 들어가 20년간 이들을 보살폈다. 이후 장애인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로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한 맹아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1956년 이 목사는 한국사회사업대학교(현 대구대)를 세우고, 국내 대학 최초로 특수교육학과를 개설했다. 특수학교를 설립하고 보니, 이들을 가르치는 전문 교사가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 목사의 손자인 나는 미국에서 학습장애 분야를 전공하고 돌아와 2011년 3월 대구대에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고등교육 전문 기관 ‘케이페이스(K-PACE)’를 최초로 설립했다.

PACE(Professional Assistant Center for Education)는 1986년 미국 루이스국립대학 특수교육학과의 하트 교수가 창설했다. 발달장애인의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마련돼 공동체 생활을 익히고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학에 가는데 장애인들은 지적 능력의 한계로 복지관이나 복지시설에 들어가야 했다. 미국도 매한가지였기에 만든 과정이었다.

대구대도 루이스국립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2011년부터 PACE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됐다. K-PACE 센터는 일반 대학처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다. 학생들이 완전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이를 통해 일상생활 훈련도 받게 되며 교내 인턴십과 교외 인턴십을 통해 직업세계를 발굴한다. 또 대학생답게 다양한 교과 교육도 받고 있다. 주로 문제 해결, 금전관리 등 독립생활을 위한 필수 과목들이다.

향후 우리나라도 장애인 인재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미국 대학들의 장애인 고등교육 정책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 대학들은 청각장애인 교육을 위해 수화를 언어로 강의할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변호사 양성을 위한 로스쿨도 별도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더 많은 대학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고등교육 과정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근용 교수(대구대 대외부총장)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