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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자녀와 화해가 좋은 양육의 시작



우리 부부는 미숙했습니다. 그 미숙함은 큰아이에게 나쁜 부모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술고시 통과 후 탄탄대로의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편은 ‘공부 잘하는 길이 성공’이라는 공식을 세우고 엄격한 양육방식을 아이에게 적용했습니다. 교육학 박사학위를 가진 엄마는 아이가 마치 자신의 교육적 권위를 인정받기 위한 수단인 양 자신의 이론대로 성장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하루는 큰아이가 시험 점수를 형편없이 받아왔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혼내고 “다음에도 점수가 이 모양이면 그때는 100대다” 하며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달 아이의 시험점수는 오히려 더 떨어졌고 남편은 약속대로 방문을 잠근 채 아이를 100대나 때렸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지 섭식장애가 생겨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몸무게가 늘었습니다. 우리는 두 손을 든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이 엄마, 아빠를 향해 절규하듯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아빠, 아빠가 저를 때릴 때는 정말 제 아빠가 아닌 줄 알았어요. 이다음에 커서 꼭 복수하겠다 생각했어요. 아빠가 존경할 만한 분이란 걸 알아요. 그러나 아빠가 저를 때리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 같아요. 다른 사람이 아빠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 봐 무서워요.”

이 말에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고민했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이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미안하다. 그동안 아빠가 아버지 역할을 잘 못했어. 어떻게 하는 게 좋은 아버지인지 몰라서 그냥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한 대로 하면 되는 줄 알았어. 이제 그것이 잘못이란 걸 깨달았다.”

그런데 바로 그날 큰아들은 엄마에게도 비수 같은 말을 던졌습니다. “엄마, 엄마는 아빠라는 사람이 자식을 100대씩 때리는 날 어디에 계셨어요. 왜 아들을 보호해주지 않았어요.”

결혼 전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야단칠 때 서로 참견하지 않기로 약속한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저는 아들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울면서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미안하다. 엄마도 네가 첫아이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몰랐어. 네가 맞던 날 엄마는 부엌에 엎드려서 울고 있었어.”

그날은 우리 부부와 큰아들이 가슴으로 만나 화해한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비로소 부모 자식 간에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부부는 세 자녀에게 자상하고 친구 같은 부모가 되려고 했습니다. 강요하거나 가르치려고 하거나 성적에 관심을 두기보다 원칙을 세워주고 에둘러 말하고,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더 생각했습니다. 나부터 자녀와 화해하겠습니다.

이영숙 박사(한국성품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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