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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칼럼] 종교인 과세 논란 이제 끝내자



종교인 과세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마무리 지어야겠다. 그동안 큰 실익 없는 논쟁만 벌였던 게 아닌가 싶다. 정부가 법률에 기반해 종교인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하자 한국교회가 중심이 돼 시행연기를 요구한 것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예외는 원칙을 이길 힘이 없었다. 헌법에 명시된 납세 의무를 상대로 한 교회의 공박은 그리 호응을 못 얻었다. “미비점이 많으니 좀 늦추자”고 했더니 “세금내기 싫다는거냐”는 힐난이 돌아왔다. 극단의 오해까지 낳았다. 종교인들이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으로 비춰졌고 여론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수 년에서 수십 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한 교회는 부각되지 않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해 경동교회,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 새문안교회, 소망교회, 연동교회, 영락교회, 온누리교회, 오륜교회, 지구촌교회 등 한국 개신교를 상징하는 교회들이 바로 그런 사례다.

한국교회 입장은 약간 엇갈렸다. 일단(一團)의 한국교회와 단체는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또 다른 교회와 기관은 예정대로 하는 게 옳다고 했다. 아쉬운 것은 2018년 과세실시를 반대했던 측의 관점에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는 점이다. 도입 시점이 이미 한차례 미뤄진 이 세제를 다시 또 2년보류하자는 식의 접근은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간과했다. 때를 다투기보다 정부에 보완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요구했었어야 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한 여론은 지지와 찬성이 훨씬 많다. 결국 정치권의 태도가 바뀌었다. 내년 초 시행을 앞둔 종교인 과세 도입 시기를 2년 더 늦추는 법안을 낸 국회의원들의 행보가 틀어졌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종교인소득 과세 시행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금년 내 마무리 될 수 있다면 내년부터 과세해도 무방하다”고 물러섰다.

그는 전제조건을 들었다. 종단별 종교인의 명확한 과세기준 확정, 저소득 종교인에 대한 세제혜택 정비, 무분별한 세무조사 방지 약속 등이다. 단서가 붙긴 했으나 방점은 과세를 받아들이겠다는 데 있다.

종교인 과세는 4개월 후면 시행된다.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가 다소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정황이 감지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세무조사 악용 가능성 등 한국교회가 우려하는 점들에 대해 꼼꼼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요식적 행정 행위로 다루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귀를 열고 더 들으려는 자세가 잘 보이지 않는다. 기획재정부장관이 직접 나서 소통에 무게를 실어야겠다. 세상과 눈금이 다른 잣대를 교회에 들이대라는 것이 아니다. 보편적 규범을 흩뜨리지 않되 특수한 성(聖)의 영역을 십분 이해하라는 것이다. 종교인 과세는 ‘조세정의’ 차원에서 의기양양하게 다뤄서는 안 된다. 이 사안은 여러 번 시도됐으나 계속 무산됐다. 50년 만에 비로소 이행된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정부는 잘 새겨야 한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후폭풍이 예상보다 훨씬 거셀 것이다.

한국교회는 무기력하게 있거나 불만을 터뜨릴 시간이 없다. 요구 사항이 정부와 정치권에 명확히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단, 교계연합기구 및 기관 등은 더 자주 만나 의견을 조율해야겠다. 교회는 당장 세무회계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회계처리시스템 등 관련 인프라를 갖춰 재정 투명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종교인 과세는 한국교회로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교회를 걱정하는 사회를 향해 교회의 공교회적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 보일 수 있다. 납세를 통해 교회가 사회적 공공성에 제 몫을 하고 있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납세는 이웃을 사랑한 예수정신을 실천적으로 구현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종교인 과세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사회적 요구다. 이를 외면하는 ‘게토(ghetto)화’된 교회는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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