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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이 땅을 기우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중단해도 게을러져도 안 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허리가 잘린 채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마땅하고도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걷는 기도’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비 오는 날 장독 덮은 자랑’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달포 전 저는 열하루 동안 비무장지대(DMZ)를 따라 홀로 걸으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음으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아픔의 땅을 내 발로 걸으며 기도를 바치고 싶었던 것은 오래된 마음속 바람이었습니다.

걸음의 시작을 강원도 고성의 명파초등학교에서 시작했던 것은 이 학교가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초등학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서 통일이 되어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함께 어울려 마음껏 뛰노는 그 날이 오게 해달라는 첫 기도를 드리며 첫 걸음을 떼었습니다. 고성-인제-원통-양구-방산-화천-철원-연천-파주, 마침내 임진각에 이르기까지 380㎞를 걷는 일정이었습니다. 먼 길을 혼자서 걷는다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고 일말의 두려움도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더는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생애 이런 날이 없었지 싶은 악천후 속 폭우를 맞으며 걷기도 했고,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만난, 도로 위를 기어가고 있는 한 마리 벌레가 꼭 내 모습이지 싶었습니다. 그런 모습,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었으니까요.

서로를 향해 겨누고 있는 온갖 총부리와 잘린 허리를 두르고 있는 철조망을 녹여 괭이와 호미와 보습을 만들 수 있다면,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산하 곳곳에 묻혀 있는 지뢰를 모두 파내고 그 자리에 곡식 씨앗을 심는다면 이 땅 어느 누구도 굶주리는 자 없을 텐데, 기도를 바칠 때마다 마음의 간절함은 더했습니다.

철조망이 보일 때마다, 철조망에 매달린 역삼각형 지뢰 경고문을 만날 때마다, 군부대 앞을 지나갈 때마다, 훈련 중인 군인들과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탱크를 만날 때마다, 어디선가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같은 기도를 바쳤습니다.

한 발 한 발을 내디디며 비로소 내 발이 내 땅에 닿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의식하지도 못한 채 허공을 살아왔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먼 길을 달려와 하룻길을 동행했던 선배 목사님은 콩국수 한 그릇을 놓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걸음과 땀을 받으시고, 갈라진 이 땅을 기우소서!”

갈라지고 상처 나 너덜너덜해진 이 땅을 기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땀과 눈물이 밴 기도, 그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의 은총뿐임을 마음을 다해 인정합니다.

한희철 목사(부천 성지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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