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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송길원] 저출산 말고 다출산으로



모든 사물의 시작은 ‘이름’으로부터 시작된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도 그렇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이어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나온다. 하나님은 천지창조에 인간을 참여시키면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했다.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이름은 존재 그 자체다. 어떻게 불려지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강화도를 ‘유배지’로 말하는 순간 버려진 섬이 된다. 하지만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말하면 강화도는 역사 유적지가 된다. 관광지가 되고 유물을 간직한 보물섬이 된다. 이름 지어진 틀(frame)이 성격을 규정한다. 사람들은 정해진 틀을 통해 사건을 해석한다. 네모 창을 통해 달을 보면 달조차 네모로 보인다. 동그란 창을 통해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은 푸른 공이 된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존재보다는 프레임에 의해 결정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이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다. 클린턴은 이 한마디로 대선 국면을 경제 문제로 전환시켰다. 이슈를 선점했다. 이래서 선거는 프레임 싸움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3대 과제는 일자리 창출, 4차 산업, 저출산 해소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렇게 발표했다. “초저출산율을 탈피하기 위해 사회경제적 구조와 인식,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하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를 위해 자녀 양육의 국가 책임 구현과 결혼·출생 양육에 친화적인 사회제도로 변화를 이행하는 데 전 국가적 총력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이 말이 국민들에게 통할까.

생각해 보라. ‘농촌봉사활동’과 ‘농촌 일손돕기’는 피곤하다. 내가 왜 농촌 봉사를 떠나야 되나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농촌 체험’은 다르다. 능동적으로 만든다. 나의 삶을 위한 변화를 충동질한다. 요즘은 음식점도 간판부터 새로 내건다. ‘좋은 날 또 오리’는 오리집 간판이다. 한 번은 수산물 차량에 붙여놓은 플래카드를 보고 웃은 적이 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굴비’로 특히 ‘영광’과 ‘굴비’ 글자는 빨간색이었다. 건강식품 ‘달리다 굼(벵이)’은 성경에 나오는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말 ‘달리다굼’(막 5:41)에 ‘벵이’를 살짝 붙였다. 굼벵이도 달린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활력이 넘치는 것 같다. 그간 우리도 모르게 속고 살아온 용어가 하나 있다. ‘피로회복’이다. 이 한마디가 피로사회를 만들었다. 피로는 해소해야지, 왜 피로를 회복하나. 회복해야 할 것은 건강이다. ‘저출산’이란 말은 피곤하고 지겹다. ‘고령화’ 역시 따분하다. 사람들은 고개부터 흔든다. 이미 기피용어다. 심리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젊은이들은 더더욱 출산을 왜 우리에게 떠넘기느냐고 항의한다.

문재인정부가 내건 저출산의 고민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감동이 없으니 어쩌나. 저출산 대신 ‘다출산(多出産)’이라고 하면 번성과 풍요가 떠오른다. 함께하고 싶다. 고령화보단 ‘장수건강사회’로 바꿔보면 어떨까. 갑자기 가슴이 뛴다. ‘명랑투병’이라 부를 때 병을 이겨내고 싶은 용기가 꿈틀거리듯 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겨야 한다. 맞는 말이다. 여기서 새 부대란 다름 아닌 새로운 프레임이 아닐까.

송길원 하이패밀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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