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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최현수] 한국적 핵전략 시급하다



요즘 연락이 통 없던 지인들의 전화가 잦다. 해외에 있는 친구들의 이메일도 늘었다. 한반도에 군사적 위협이 높아지면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이들의 궁금증은 대부분 한국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느 때처럼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일러줬다. 이전에는 대부분 “그렇지” 하며 안도했다. 한데 이번에는 다르다. 외신들은 한반도에 전쟁시계가 째깍대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심드렁하다고 보도했지만 불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험악한 ‘말 전쟁’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안고 있다. 다른 나라의 문제로 여겼던 ‘절대무기’ 핵무기의 위협에 대한 공포 역시 없지 않다.

과거 오류를 탓해 뭐하랴마는 우리는 큰 실책을 범했다. 미국 국방대학교 셰인 스미스 박사는 2015년 한 논문에서 “북한에 대한 무지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후진국으로 핵 개발 능력이 낮고 의지가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북한이 수없이 많이 핵 개발 의지를 노출하고 진전 속도를 과시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 스미스 박사는 “그간 우리가 손을 허공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실책임이 분명하다”고 통절히 반성했다.

북한 핵 프로그램을 외교적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용 카드’나 ‘위협용 수단’ 정도로 치부했다. 무기로 쓸 수준까지 넘볼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오산이었다. 국제정치학자 리처드 베스는 “핵무기 개발은 뚜렷한 목적을 지닌 장기적인 노력으로 과학기술과 물질자원을 총동원해야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규범에 공개적으로 저항해야 하고 거센 외부압력을 이겨내야 한다고도 했다. 한 나라가 이만한 대가를 치르면서 핵 개발을 하고 있다면 이를 포기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한과 미국 전문가들의 1.5트랙(반관반미) 대화에서 북한 측 인사는 “너무 큰 고통과 아픔을 겪고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은 끝에 핵무기를 갖게 된 만큼 이를 사용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북·미 간 평화협정이 체결돼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어떤 협상도 없다”고 했다.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북한이지만 끈질긴 대화를 통한 비핵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동시에 북한 핵을 무력화할 수 있는 핵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우리는 핵전략을 갖지 않았다. 핵전략은 핵을 가진 나라만 고민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다. 핵전략에는 상대방이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핵억지’와 핵 사용 시 대응하는 ‘군사전략’이 포함된다. 합참은 ‘북핵·WMD(대량살상무기) 대응센터’를 ‘핵·WMD 대응 작전본부’로 강화할 계획이다. 북한이 1950년대 중반 핵·미사일 개발 계획을 세우고 90년대부터 가속화 행보를 보인 데 반해 너무 늦었다.

이제라도 빈틈없는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국방부와 합참에 핵전문가들은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이들이 적어도 수년간 전략 수립에 총력을 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잦은 인원교체는 정책의 일관성 상실은 물론 지식과 경험이 축적될 공간을 앗아가 버린다. 외부수혈도 필요하다. 미국은 핵전략을 수립할 때 수많은 민간전문가들을 영입했다. 내부자들이 결코 볼 수 없는 오류를 집어내는 ‘레드팀’이 필요해서다. 또 핵전략에 군사적인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정치 경제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고 인간과 국가의 집단심리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자유로운 토론문화도 정착돼야 한다. 작지만 강한 군대로 알려진 이스라엘군이 창의적인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병사들도 장군의 의견에 오류를 지적할 수 있는 열린 토의가 가능해서다.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이 그대로 수용되는 건 재앙에 가깝다. 국제정치학자 폴 브래큰은 현재를 ‘제2의 핵시대’라고 부른다. 미국과 소련만 경쟁했던 ‘제1의 핵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다양한 변수들이 고려돼야 한다는 의미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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