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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웃기는 作名, 이제 그만!



예전에 부산 지하철을 탔더니 감천동 문화마을을 ‘한국의 마추픽추’로 소개하고 있었다. 관광회사도 아닌 공공기관이 제작한 광고였다. 여기저기서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홍보가 감천 문화마을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겠으나 마추픽추니, 산토리니니 하는 비유가 적절한지 내내 미심쩍었다. 통영에서 나폴리 이름을 듣는 것처럼 불편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지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감천 문화마을과 마추픽추와 산토리니는 태생부터 규모, 성격까지 판이하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모두 남들이 작성한 자료에 바탕한 것이었다. 직접 가보지도 않고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것은 좋은 버릇이 아니라고 배웠다. 이 칼럼을 내놓기까지 수년간의 기다림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페루의 마추픽추에 간 것은 3년 전이었다. 기독 NGO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1박2일로 다녀오는 일정을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 이른 새벽, 리마에서 출발하니 점심 무렵에 쿠스코에 도착했는데, 비아그라도 없이 해발 3600m의 고산지대에 당도하니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파 한 발짝도 걷기 싫었다. 여기서 다시 아구아칼리엔테라는 마을까지 가서 2400m 산마루에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

이윽고 정상에 올라 신령스러운 공중도시를 내려다 봤을 때의 놀라움이란! 지긋지긋한 고산병이 순식간에 날아갈 정도였다.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불가사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자질구레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는 생략하건데, 분명한 것은 감천 문화마을과는 달랐다. 계단식 논이 있는 것 빼고는 비교할 부분이 아예 없었다.

산토리니는 마추픽추 이후 2년 만에 닿을 수 있었다. 에게해를 품은 고고한 자태, 고색창연한 신화의 무대,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에 대한 향수, 특유의 블루 앤드 화이트 건축…아크로티리 고고학박물관은 손예진의 이온음료 광고나, 꽃보다 할배의 주마간산을 넘어 지진과 화산활동이 빚어낸 섬의 길고도 거친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로운 섬인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산토리니가 그저 예쁜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라는 사실이다. 면적이 75.8㎢라고 하니 울릉군(72.56㎢)과 비슷하다. 여기에는 기념품 가게나 카페도 많지만 공항과 학교, 호텔과 병원, 중국집, 은행, 와이너리, 심지어 한국타이어 지점까지 들어와 있다. 언덕 위의 파란 집 외에는 감천마을과 비교한다는 것이 멋쩍을 정도다.

감천 문화마을의 가치는 소중하다. 수산물을 가공하는 냉동창고가 즐비하고, 커다란 화물선이 기항하던 감천항 주변에 문화마을이 들어선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런 곳을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할망정 엉뚱하게 비유함으로써 조롱거리로 전락해서는 안 되기에 하는 말이다. 외국의 유명 관광지에 빗대기보다 그냥 스스로 빛나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

요즘 들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망리단길’이다.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은 망원역 주변 길을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빌려와 붙인 모양인데, 문자의 조합이 망측하다. 주민들도 지역 고유의 특색을 살리겠다며 ‘망원동 길 이름찾기 프로젝트’를 만들 정도다. 경의선 숲길을 난데없이 연트럴 파크로 부르는 꼴과 비슷하다.

이런 해괴한 일은 인터넷에서 부평초처럼 떠도는 이름을 제도권 언론이 인용하면서 확산된다. 여기에다 지자체마저 흥행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바람에 공인효과까지 얻는다. 비유의 묘미를 모르는 바 아니로되, 무릇 비유를 할 때는 등가의 원칙 아래 보편적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한국의 마추픽추 혹은 산토리니, 망리단길이나 연트럴 파크라는 작명은 상상력의 빈곤이자 문화의식의 결핍이 만들어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 (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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