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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오종석] 멀로니와 마크롱, 문재인



1991년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가 이끌던 캐나다 진보보수당은 연방부가세 제도를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국가재정을 위한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누적재정적자 비율이 54.7%(1990년)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재정적자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물론 전 국민에게 추가 부담을 안기는 세금을 신설하는 것이니 여론이 좋을 리 없었다. 당시 캐나다 국민 80%가 반대할 정도였다. 2년 후인 93년 총선에서 진보보수당은 169석의 과반 의석 중 2석만 건지고 참패했다. 그 후 97년을 기점으로 캐나다 재정은 흑자로 돌아서고 경제는 활력을 되찾았다.

지난 5월 대선에서 66%를 득표해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석 달 만에 30%대까지 뚝 떨어졌다. 지지율 급락은 예산 감축 발표, 노동개혁 잡음, 군부와의 다툼 등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학생들에 대한 주거비 지원 감축, 저소득층 세제 경감을 위해 은퇴자들의 세 부담을 늘린 조세개혁, 노동시장의 자유화를 염두에 둔 노동개혁 등이 결정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7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촛불 민심의 압도적 지지 속에 취임한 문 대통령은 탈권위와 소통 행보, 적극적인 서민정책 등으로 70%대의 고공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국민 대다수는 문재인정부의 초기 정책 발표에 환호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지원책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증원, 서민 복지증진 등 하나같이 달콤한 소식들이다. 국가가 나서서 돈 더 주고, 건강 더 챙겨주고, 일자리 만들어 안정시켜 준다는 데 싫어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가장이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돈만 있으면 내가 뭘 못해주겠어.” 문제는 돈이다. 이렇듯 다 해줄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국가재정이 튼튼하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답이 안 나온다. 정부는 내년부터 2021년까지 기초연금을 월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1년에 약 4조원, 2022년까지 총 21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향후 3년 동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약 90만명 늘릴 계획이다. 여기에도 약 9조5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내년부터 0∼5세 아동에게 지급되는 월 10만원의 수당 역시 매년 2조6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용·성형을 제외한 전 의료 분야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도 내놨다. 이를 위해 5년간 30조6000억원의 건강보험재정이 소요된다.

정부는 각종 정책과제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178조원으로 보고 있다. 이 중 세입 확충으로 5년간 82조6000억원을, 지출 구조조정 등을 통한 세출 절감으로 95조4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세입 측면에서 초고소득자, 초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세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세출 절감도 이전 정부 역시 매년 해왔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정부가 추산한 178조원 규모 자체가 실제보다 과소 평가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에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나 공무원 증원 등이 현실화되면 엄청난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좀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면 결국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진짜 훌륭한 지도자로 멀로니 총리를 자주 인용했다. “국가를 운영하겠다면 이 정도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이 향후 프랑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기 고공 지지율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자칫 인기영합주의적이고 단기적인 성과 위주 정책이 범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국가 미래를 위해 국민들 입에 쓴 약을 내밀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가 되길 기대한다.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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