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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세대갈등 녹이기 위해 먼저 듣겠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르신들의 회고록이나 자서전 집필을 돕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일흔이 넘은 분들로, 해방 전후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산업화 또는 민주화의 주인공으로 일하시다 은퇴한 분들입니다. 당신들이 살아온 세월 속에서 아픔과 기쁨, 가난과 풍요, 성취와 실패, 배신과 화해의 시간들을 추억하며 비로소 삶이 가져다주는 감사와 보람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결코 망각하지 못하는 세월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시간이었습니다. 적어도 자서전 집필을 도운 어르신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쟁의 경험을 회고하는 순간,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한 기억으로 그 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시간대별로 촘촘하고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외 없이 그 시간 속에서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경험한 전쟁 공간의 기억을 듣고 또 공감하면서, 저는 지금까지 책이나 영화로 접하고 이해해 온 6·25전쟁의 모든 정보들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의 기억체계 속에서 1950년은 작년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풀리지 않던 문제 하나가 해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공감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바로 지난해, 또는 어제 일어난 것 같은 전쟁, 거기서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누이와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껏 울지도 못한 채 피난길을 서둘러 떠나야 했던 그들의 어린 시간들, 그 시간들을 살아온, 아니 살고 있는 분들이 내 앞에서 ‘노인’이라는 모습으로 살아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당신들의 간절하고도 고단했던 시간들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저 같은 사람에게 비로소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망각해선 안 될 시간을 기억으로 남기고 그 토대에서 비로소 내일을 열어갈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습니다. 유난히 노인세대가 많이 모이는 우리의 교회에서라도 어르신들이 살아온 시간들을 다음세대가 진지하게 듣는 노력을 하면 좋겠습니다. 세대갈등이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말하지만 이런 갈등을 녹여가기 위한 노력은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첫걸음은 ‘들음’이라고 믿습니다. 어르신들의 특별한 경험이 만들어낸 소통의 한계들을 이제 들음으로 극복해 나가면 어떨까요.

“들으라 이스라엘”이라고 강조한 성경의 가르침처럼 “들으라 젊은 세대여”라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나부터 먼저 들을 때 세대갈등과 이념갈등의 아픔은 녹아내릴 것입니다.

박명철 교수 (세종사이버대, 나부터캠페인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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