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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서승원]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를 보며



냉전 해체 후 경제제재 전성기라는 말이 회자된 바 있다. 최근에는 이런 언급이 무색할 정도로 초(超)전성기다. 지난 2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대 북한-러시아-이란 패키지 제재법안에 서명했다. 이 중 대북 제재법안은 원유·석유제품 수입 봉쇄, 북한 노동자 고용금지, 북한 선박과 유엔 대북제재 거부 국가의 선박 운항금지, 온라인 상품거래 및 도박사이트 차단, 미국인 북한 여행 제한 등 가히 전방위적이다.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중국 및 러시아로부터 북한으로 유입되는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유엔에서는 제8차 대북제재결의안 표결이 이뤄졌다. 북한 수출의 3분의 1을 봉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국은 일본이다. 고이즈미 정권 당시엔 개정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이른바 경제제재법)과 특정선박 입항금지법 등을 마련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그리고 핵·미사일 개발이 계기였다.

최근에는 유엔 제재 이외에도 그물망 같은 독자적인 각종 제재조치를 집행 중이다. 북한당국자 입국금지, 조총련계 조선인 재입국 금지, 일본인 북한입국 자제와 같은 인적규제, 무기류·사치품, 기타 전품목 수출입 금지 등 물자 관련 조치, 북한 입국 시 30만엔 이상 지참 불가를 비롯한 자금 관련 조치, 그리고 북한선박 입항금지, 전세항공기 환승 금지 등을 망라한다. 북한 정부관계자가 일본에 올 수 없고 북한을 방문한 조총련계 인사가 일본에 돌아올 수 없으며 북한산 바지락, 성게, 청미래덩굴, 스테인리스 가공품을 수입하지 못하고 일본산 피아노나 화장품도 수출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제재는 만능의 처방전이 아니다.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를 참고로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자.

첫째, 일본은 북핵 문제에 비해 일본인 납치 문제를 더 중시한다.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북 제재는 유지될 것이다. 둘째, 제재 강도는 일본이 가장 엄격하고 미국과 한국이 그 뒤를 따른다. 대북 제재가 강화될수록 한·미 양국의 제재 조치 내용이 일본과 유사하게 수렴되어 갈 것임을 예고한다.

셋째는 아무리 제재를 가한들 김정은 체제가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는 북한 핵무장은 기정사실이며 군사력 행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핵무장을 사실상 묵인하든가 한 세대가 걸리더라도 비핵화를 밀어붙이는 길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비핵화를 추진할 경우 냉전 초기 조지 케넌이 제시한 ‘유연한 봉쇄’, 즉 장기적이지만 확고하고 주의 깊은 봉쇄를 지속해야 북한을 교섭 테이블에 나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경제제재는 직접적 효과보다는 간접적 효과가 더 많다는 점이다. 대북 제재는 유엔결의라는 국제사회 규범을 위반한 데에 대한 징벌적 조치다. 핵무장을 꿈꾸는 국가나 단체에 대한 경고도 된다. 정치권력이 국내적 정략을 위해 제재를 이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 일본 보수우파는 아베 정권이 북한 위협에 잘 대응할 수 있다면서 정권 연장을 주장한다. 일종의 가스 빼기로 경제제재를 통해 한국이나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을 벌이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의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제재 역효과에도 유의해야 한다. 거듭된 제재는 북한의 체제 결속을 강화시켰고 반정부 운동을 야기하지도 못했으며 북한 주민들에게 그 피해가 전가되곤 했다. 대외적 대화·교류는 협소해졌고 최근엔 거의 단절 상태다. 대북 제재에 신중한 국가나 대화를 주장하는 국내정치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기도 했다. 제재 실행에 있어서 인도적 고려와 전략적 고려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도 지난하다. 결국 경제제재는 우리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서승원 고려대 교수 글로벌일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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