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도 '미투'…최영미 시인 '괴물'로 성추행 폭로

SNS 통해 문인들 과거 행태 고발 확산
 
문단의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시킨 최영미 시인.

2016년 '#문단_내_성폭력'이란 해시태그로 문인들의 성폭력 행태를 고발해 '미투' 운동의 원조가 된 문학계에서 다시 유명 문인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글이 주목을 받고 있다.

6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최영미 시인이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이 화제로 떠올랐다.

이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라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어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는 내용이 있다.

트위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문단_내_성폭력 아카이브'는 최근 이 시 전문과 함께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 적어도 처벌이나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최영미 시인님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폭발적인 리트윗 건수를 기록하며 공유되고 있으며, 누리꾼들은 시의 해당 인물로 짐작되는 시인의 실명을 언급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최 시인은 연합뉴스의 취재 요청에 "이 시를 문학작품으로 봐 주시기 바란다. 문단의 거짓 영웅에 대한 풍자시이다. 더 드릴 말씀이 없다"며 더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으나 6일 방송에 출연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다시 폭로했다.

최 시인은 이날 저녁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처음에 누구를 써야겠다 하고 쓰지만, 시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막 들어온다. 처음에 자신의 경험이나 사실을 기반해서 쓰려고 하더라도 약간 과장되기도 하고 그 결과물로 나온 문학 작품은 현실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언론사 기사에 해당 원로 시인의 입장으로 보도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는 내용에 관해서는 "그 문인이 내가 처음 떠올린 문인이 맞다면 굉장히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상습범이고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데뷔할 때부터 너무나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목격했고 대한민국 도처에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반박했다.

또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관해 "내가 등단할 때 일상화돼 있었다. 첫 시집을 1994년에 내고 문단의 술자리에 많이 참석했는데, 그때 목격한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문단이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내가 여기 들어왔을까 싶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어떤 여성 문인이 권력을 지닌 남성 문인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뒤에 그들은 복수를 한다. 그들은 문단의 메이저 그룹 출판사ㆍ잡지 등에서 편집위원으로 있는데,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여성) 문인에게 원고 청탁을 하지 않는다. 작품이 나와도 그에 대해 한 줄도 쓰지 않고 원고를 보내도 채택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녀들의 피해가 입증할 수도 없고 '작품이 좋지 않아서 거절한 거예요'라고 말하면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작가로서 생명이 거의 끝난다"고 폭로했다.

이어 시 청탁을 오랜만에 받은 이유가 그런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이냐는 질문에 "관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절한 요구가 한두 개가 아니고 한두 문인이 아니다. 30대 초반으로 젊을 때 문단 술자리에서 내게 성희롱, 성추행을 한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었다. 그런 문화를 방조하는 분위기,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그들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해 복수한다면 그들은 한두 명이 아니고 아주 여러 명이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문단_내_성폭력 아카이브'에서는 또다른 중견 문인 김모 씨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폭로 글도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성폭력 전력이 있는 문인들을 열거한 명단도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있다.

문학계는 2016년 김현 시인의 폭로로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해 10여 명의 가해자 실명이 공개되고 문단 내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그러나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황해문화'에 실린 시 '괴물'

연합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