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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박현동] 노숙여인과 대선후보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던 그제 여의도공원에서 그녀를 만났다. 용케도 혹한을 잘 견뎌냈나 보다. 내심 반가웠다. 그녀는 나에겐 봄의 전령사다. 긴 겨울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올해도 그랬다. 오히려 더 멋진 모습으로.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 단발머리 그대로였다. 얼굴은 여전히 퉁퉁 부었다. 손등도 마찬가지다. 오랜 노숙 탓이리라. 누구와 대화하듯 뭔가를 말했으나 사실 혼잣말이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치마와 빨간 립스틱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베이지색 등가방을 멨다. 지난가을엔 엉클어진 머리에 꽃 장식을 하기도 했다. 마치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여주인공처럼.
 
초점이 흐린 눈은 왠지 슬퍼 보인다. 서른 후반 됐을까. 목소리는 앳되고 가냘프다. 영락없는 여자다. 회사 옆 쉼터에 종종 나타난다. 벌써 몇 년째다. 인근에선 나름 ‘유명인사’다. 안 보이면 은근히 걱정되고 보이면 안타깝다. 문득문득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이름은 뭘까. 집에서 쫓겨났을까, 아니면 가출했을까. 결혼은 했을까. 그렇다면 남편에게 버림받은 것일까. 아이는 없는 걸까. 밥은 제대로 먹을까. 남들처럼 부모가 계실 것이고, 형제자매도 있겠지. 그녀에게 분명 말 못할 슬픈 사연이 있을 것이다.
 
지난여름엔 또 다른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유난히 배가 불렀다. 누군가 ‘몹쓸 짓’을 해서 임신한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 처음 의문을 품었던 이후로도 그녀는 우리 앞에 나타났고,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뀐 지금도 몸매는 예전 그대로다. 골초라고 하긴 그렇지만 담배를 즐긴다. 혼자 담배를 피면서 묘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얼굴이 익은 사람들을 마주칠 땐 수줍은 웃음을 보인다. 종종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담배 한 개비만’이라고 한다. 노숙에 담배까지 피우면 더 해로울 것이지만 담배가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세상은 지금 대통령 선거로 시끌벅적하다. 후보들은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겠다고, 살기 좋은 나라,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들의 약속이 이 여인에게도 해당될까. 속을 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해본다.
 
글=박현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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