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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스페셜/정치탐구] 집전화 ‘보수 성향’ 휴대전화 ‘진보 성향’… 여론조사 ‘이중성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안으로 다가오면서 각종 여론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세론’으로 굳어질 것만 같던 대선 판도가 출렁이자 투표소로 향할 유권자들이나 각 정당·후보들은 날마다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만큼이나 여론조사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연합뉴스·KBS·코리아리서치가 지난 8∼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은 대선 주자 ‘5자 대결’에서 36.8%로 32.7%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하지만 이데일리·리얼미터의 8∼9일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5자 대결에서 41.1%로 안 후보(34.8%)를 오차범위 이상 앞서는 것으로 집계됐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판이하게 나타난 셈이다. 지난해 4·13총선이나 미국 대통령 선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등 여론조사가 빗나간 사례가 속출해 ‘여론조사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후보들도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는 ‘엉터리’라며 부인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를 적극 내세우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를 널뛰게 하는 요인은 무엇이며, 여론조사를 둘러싼 후보들의 주장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여론조사의 복병, 조사 방식
 
문재인 후보 측은 지난 3일 이례적으로 내일신문·디오피니언(2일 조사)이 안 후보와의 양자대결을 가정한 여론조사를 정면 비판했다. 이 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문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43.6%로 문 후보(36.4%)를 앞섰다. 문 후보 측은 이 여론조사에 대해 “여론조사의 기본인 무선전화 방식이 없고, 조사 기간이 하루밖에 안 됐다”고 지적했다.
 
많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조사 방식에 정답은 없지만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사 방식은 조사에 활용하는 통신수단에 따라 유·무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휴대전화 확산으로 여론조사에서 무선전화 활용 빈도가 과거에 비해 높아졌지만 여전히 다양한 연령대의 표본을 채집하기 위해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유·무선을 혼용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11일 “세대별로 유·무선에 대한 응답 비율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유선조사 응답자 대부분은 생활이 안정돼 집에 있는 사람들이거나 가정주부로 보수적 성향이 짙다. 반면 무선조사 응답자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경향이 있다”고 했다. 유·무선 여부에 따라 응답자 성향도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조사 방식을 기준으로 보면 조사원이 응답자가 직접 통화하는 전화 면접과 사전에 입력된 기계음에 따른 자동응답 시스템(ARS)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조사를 위해 전화 면접이 좋다는 의견이 있지만 실제 투표로 이어지는 표심을 파악하는 데 ARS가 효과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ARS 조사는 회피하지만 막상 상담원과 연결된 전화 면접에는 차마 끊지 못하고 응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ARS에도 응답률이 높은 편이다. 이들이 투표일에 실제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화 통화가 아닌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여론조사도 있다. 무응답이 많은 전화 통화 조사를 보완하기 위한 개념으로, 교통카드인 모바일 티머니 고객을 상대로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고 경제적 보상을 조건으로 온라인 설문에 참여케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그러나 무작위 표본 추출 원칙에 위배되며, 응답자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허위로 입력할 위험도 있다. 이런 특성 차이 때문에 여론조사 기관들은 다양한 조사 방식을 섞어서 조사에 임한다.
 
전문가들은 조사 기간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기획실장은 “하루 만에 전 연령대와 전 지역의 표본에 대한 조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만약 조사가 골고루 이뤄졌다면 조사 기간이 하루란 사실만으로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샤이 보수’와 응답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줄곧 “지금 여론조사는 보수우파들이 창피해서 응답을 안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실시되는 여론조사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보수 지지자들이 여론조사를 회피하고 있는 반면 중도·진보 성향의 지지자들만 여론조사에 대거 응답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15∼30% 안팎으로 수렴되는 여론조사의 낮은 응답률을 근거로 여론조사의 효용성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응답률에 대해 “5% 이하 수준으로 지나치게 낮은 것만 아니라면 응답률은 조사 결과와 별 관계 없다”고 말한다. 응답률이 낮더라도 표본추출이 정확하면 표심을 예측하는 데 큰 무리가 없으며, 조사 방식 등의 변수가 다양하기 때문에 단순히 응답률만으로 조사의 정확도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탄핵 정국에서 여론조사 응답률 자체는 전보다 높아졌지만 자신을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줄었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응답이 줄어든 것은 탄핵 국면에서 자신을 보수라고 밝히기 부끄러워하는 ‘샤이(shy) 보수’가 늘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보수 응답 감소분이 최순실 사태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보수에 실망해 지지 대상을 바꾼 사람들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전문가들도 ‘샤이 보수’의 존재에 대해선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어느 때나 다수 주장과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가 성향을 숨기는 현상(침묵의 나선효과)은 분명히 존재했다”며 샤이 보수 존재에 힘을 실었다. 반면 배종찬 본부장은 “탄핵 결정을 계기로 더 적극적으로 조사에 응하는 보수 응답자들도 많아졌다”며 보수 열세 구도인 여론조사 결과와 샤이 보수는 무관하다고 했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장은 “ARS의 경우 응답자가 부담 없이 자기 성향대로 조사에 응하지만 전화 면접은 성향을 숨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사 방식에 따라 샤이 보수가 도드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당 경선에 참여했던 김진태 의원과 홍준표 후보 등은 “여론조사와 달리 ‘빅데이터 관심도’에서는 내가 1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 검색이나 SNS 언급 빈도가 높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 응답률이 낮은 상황에서 여론조사의 대안으로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높은 관심도가 실제 표심으로 이어질지 단순한 가십성 언급에 불과한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노년층 등 SNS 활용도가 떨어지는 집단의 표심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이종선 허경구 기자 remember@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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