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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 스페셜/월드] 트럼프 막무가내 샷, 벙커에 빠지다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취임 75일째를 맞았다. 취임 초기 성과를 가늠하는 100일 중 4분의 3이 지났다. 낡고 부패한 워싱턴정치를 개혁하겠다던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그러나 임기 초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좌충우돌을 거듭하고 있다. 반(反)이민 행정명령은 잇따라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고, 전임 정권의 유산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안) 폐기는 당내 반란 때문에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갈수록 커지는 ‘러시아 커넥션’ 의혹은 트럼프 행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고, 사위와 딸을 백악관 핵심 요직에 임명하는 정실인사는 윤리의식을 의심케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정지지도는 같은 시기 역대 미 대통령 중 최저인 35%까지 내려앉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아직도 일방적 지시에 익숙한 사업가 체질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미 대통령이 최고 권력자일지라도 의회를 설득하거나 행정부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꿰뚫지 못하면 자신의 어젠다를 관철시킬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을 터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트럼프가 국내 정치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돌파구를 외교에서 찾기 위해 북한 핵문제와 시리아 내전 등에서 예상 밖의 ‘깜짝 선택’을 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 흔들리는 리더십
 
두 차례나 발동한 반이민 행정명령이 연거푸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자 트럼프는 더 이상 무슬림 입국금지 공약을 추진할 수 없게 됐다. 이후 트럼프가 꺼내든 정국돌파 카드가 오바마케어를 폐기하고 대신 이를 대체하는 트럼프케어를 관철시키는 것이었다. 보험료 급등과 복잡한 보상체계, 의료보험사 도산 등으로 불만과 비판이 많은 오바마케어를 폐기하겠다고 나선 건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공화당 내 강경보수파인 ‘프리덤코커스’ 소속 의원 30여명이 반대하면서 의회에서 투표조차 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오바마케어 폐기 시도가 좌절된 뒤 심각한 리더십 손상을 입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프리덤코커스 의원들을 지목해 내년 선거에서 낙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프리덤코커스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기득권 세력에 굴복한 것 아니냐”며 집단 반발했다. 트위터를 통해 현직 대통령과 당내 반대파 의원들이 주고받은 난타전은 공화당을 내전 수준으로 비치게 했다. 프리덤코커스 의원들이 트럼프의 협박에 꿈쩍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 지지기반이 확고한 의원들인 데다 지역구에서는 트럼프케어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트럼프가 트럼프케어 무산 주역으로 지목한 라울 래브라도 의원은 트위터에서 트럼프에게 “프리덤코커스는 다른 이들이 달아날 때 당신과 함께했다”며 “누가 당신의 진짜 친구인지 기억하라”고 응수했다.
 
이러는 사이 트럼프의 국정지지도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도는 지난달 28일 35%까지 떨어졌다. 이 수치는 취임 초 같은 시기 역대 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중 가장 낮다. 임기 중 이보다 낮은 국정지지도를 기록한 역대 대통령이 일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이라크전쟁(조지 W 부시·25%),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실업률(로널드 레이건·35%), 인플레 고공행진과 이란혁명(지미 카터·28%), 워터게이트(리처드 닉슨·24%), 베트남전쟁(린드 존슨·35%) 등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대통령들이었다. 의회 권력을 공화당이 장악했고, 미 경제도 회복세에 들어서는 등 정치·경제적 환경이 모두 우호적인 상황에서 트럼프가 만난 리더십의 위기는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크다.
 
◇ 권력의 속성 몰라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트럼프가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의 본질적 차이를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성공한 사업가인 트럼프가 기업경영에서는 독선을 부릴 수 있었으나 소통과 타협의 정치를 터득하지 못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이민 행정명령의 경우 법원에서 한 번 제동이 걸렸는데도 거의 같은 내용의 행정명령을 고집했다가 법원에서 또다시 거부당하는 망신을 샀다. 오바마케어 폐기의 경우 일부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들을 끌어들이면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는데도 ‘협상의 달인’답지 않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의회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의 지위만 믿고 설익은 대체법안을 밀어붙인 것이다. ‘소통과 타협’을 거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리처드 노이슈타트 전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대통령의 권력’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은 설득에서 나온다”며 “의회나 행정부가 원하는 것이 대통령이 원하는 것과 같을 때 대통령이 힘을 갖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했다.
 
미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자리이긴 해도 제도적으로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를 받기 때문에 권력행사에 한계가 있다. 상·하원 합쳐 535명에 달하는 의원들의 속셈이 저마다 다르고, 거대한 행정관료 조직은 제각각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돌아가기 때문에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가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 아베와 골프 친 트럼프, 시진핑과는 안 한다
시진핑 ‘골프=사치’ 인식… 中 공직자에 금지령
美·中 갈등으로 치닫는 상황과 부조화 판단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광이다. 취임 이후 사흘에 한 번꼴로 골프장이 딸린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로 날아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는 지난 1월 정상회담을 마친 뒤 이곳에서 골프를 치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런 트럼프가 6∼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에는 골프를 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시 주석이 권력을 잡은 뒤 중국 공직자들에게 골프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미국 CNN방송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축구광으로 널리 알려진 시 주석은 중국의 축구 발전에 대해서는 대단한 열의를 보이고 있지만 골프는 부패의 상징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2015년 중국에서 발간된 ‘신행동강령’은 공금으로 골프를 치다 적발된 공무원과 공산당원을 처벌토록 하고 있다. 대부분 공무원과 당원들의 보수로는 수천 달러에 달하는 골프장 회원권을 사기 어려운 현실이어서 사실상 골프는 공직자들에게는 금지된 스포츠다.
 
중국에서는 1949년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골프를 ‘부르주아의 사치 게임’이라는 이유로 전면 금지했다. 골프가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많고, 골프장이 농사지을 땅을 잠식한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개혁개방 이후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에서 골프가 허용됐으나 이후에도 중국 공산당은 ‘금지와 장려’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한편에서는 트럼프와 시 주석이 북한 핵문제와 무역전쟁, 남중국해 갈등 등 심각한 주제들을 토론하는 와중에 골프를 치는 게 안 어울린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미국과 중국이 핑퐁외교로 국교정상화를 이룬 역사를 떠올려 두 사람이 탁구를 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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