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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트럼프 탄핵




‘모든 음모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다.’ 옛 소련 시절부터 죽 내려오던 미국 정보기관들의 금언이라고 한다. 비밀공작을 하는 중앙정보국(CIA)이나 방첩활동을 하는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의 머리에 박힌 전통적 인식이다. 냉전 때부터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대결하면서 굳어진 이 금언은 지금도 통용된다.
 
워싱턴에서 만났던 어떤 외교관은 러시아 쪽 사람들을 만날 때는 다른 국가와는 좀 다른 태도를 유지하게 된다고 했다.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란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영역에는 민간인으로 위장한 블랙 요원이나 외교관 신분의 화이트 요원 등이 진짜 외교관과 뒤섞여 활동하고 있다. 그러니 만나는 상대방을 스파이라고 가정하는 게 매뉴얼대로 잘 대응하는 것일 게다.
 
러시아 때문에 미국이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이미 사임했고, 법무장관도 혐의를 받고 있다. 탄핵 얘기는 취임 전부터 트럼프 및 가족들의 사업과 대통령 직위 사이 이해충돌 논란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일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제임스 코마 FBI 국장이 러시아 측의 트럼프 후보 지원 사실을 “수사하고 있다. 캠프 어느 누구도 수사 대상”이라고 인정하면서 구체화됐다. 혐의가 인정되면 반역이다. 미국에서 반역죄는 가장 중대한 범죄행위다. 한 시민단체의 탄핵서명운동에는 27일 정오 현재 91만5813명이 참여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트럼프 탄핵이 속삭임에서 열린 대화 수준으로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역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Inevitability disguises as an accident)’이라고들 한다. 예일대 법대 교수 에이미 추아는 2008년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로마 등 역사상 세계를 제패한 초강국들은 관용으로 제국을 확대·유지시켰으며, 만약 미국이 쇠퇴한다면 그것은 관용의 상실 때문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인종차별적 정책을 썼으며, 고립주의를 택했다. 공약 1호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제) 철폐는 무산됐고, 취임 초기 지지율은 역대급으로 낮다. 여기에 사익을 위한 이해충돌 논란과 러시아와 내통 혐의까지…. 탄핵 움직임은 그냥 우연이 겹치는 건가, 필연인가.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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