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





얼마 전,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노무현 지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 연설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그 연설을 이제야 들으며 나는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머니가 남긴 가훈이라며 하시는 말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권력에 맞서 싸우며 한 번도 권력을 쟁취하지 못했던,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야만 했던 이들에게 돌아가신 선조들은 이런 말씀을 대대로 남기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의에 항거했던 그 수많은 이들이 모난 돌이었고, 바람에 역행했고, 그래서 흐름을 거스르다가 희생당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우리는 정의를 이야기하며, 우리 후대들에게,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역설의 말씀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과 같은 이야기를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서 들으며 컸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듣던 아이여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살았다. 그러나 어떤 메시지는 뒤늦게 당도한다. 흐름에 역행하는 소수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고, 바람을 거스르는 이단자일지 모르지만, 모두가 한꺼번에 일어나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세운다면 바람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지난 6개월간 광화문광장을 통해 보았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우리의 작은 결정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든다면. 내가 오늘 해야 할 사소한 결정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개인이 하루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의 범위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의 결정권을 맡길 테니 공공의 선을 위해 보다 큰 결정을 하는 데 힘을 보태라고, 우리는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뽑고,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지도자들의 권력은 우리에 의해 ‘잠시 맡겨진 힘’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천부적인 권력’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아직도 있는 것 같다.
 
 
글=유형진(시인),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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