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거스를 수 없는 상식




여태 살면서 이렇게 심장이 조여드는 생방송은 처음이었다. 사상 유례 없는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방송을 보면서, 그 22분 동안 느꼈던 심장 두근거림과 간담 서늘함은 사십 여년 넘는 내 개인 생애를 돌아봐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그 시각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든 TV를 켜놓거나 인터넷 방송을 연결해 놓거나 많은 이들이 그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생방송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당연한 결과를 왜 이렇게 가슴 졸이며 기다려야 했는지 억울한 사람도 많았겠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며 분노하고 실의에 빠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슬프게도 분노와 실의에 빠진 이들 중엔 나의 부모님도 포함되신다. 하지만 그분들께 감히 뭐라고 건넬 말이 없어 통화도 못하고 주말을 지냈다. 아무리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그분들이 힘든 시절을 겪고, 견디시며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 내 상식을 버리며 그분들의 상식을 따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 누군가에겐 비상식일 수도 있고, 내가 비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상식이었기에 이 사달이 난 것은 아닐까. 그러니 서로가 상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상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지. 하지만 누구에게나 거스를 수 없는 상식이 하나 있다. 무고한 죽음은 막아야 하고, 살아 있는 자들은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 그걸 지키기 위해 ‘법’이 있는 것이다. 

광장에서 사람이 죽었다. 백남기 농민의 희생 이후 겨우내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광장에서 부딪히는 그 몇 달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사고다. 탄핵을 선고받고도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끝까지 버티고 있는 자를 지지한다는 이들이 그 희생자였다. 제발 더 이상 어이없는 죽음을 막았으면 좋겠다. 누구도 그분들을 부추기지 말았으면. 돌아가신 이들의 명복을 위해서라도 탄핵 선고를 받은 자의 상식 있는 모습을 딱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

유형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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