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학교급식의 내공




올해로 중 2가 될 우리 아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일명 ‘학교 밖 청소년’이다. 물론 작년 12월까지는 학교에 다녔다. 그 학교는 초등 5학년 과정부터 다니게 된 대안학교였다. 작년 가을부터,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그때부터 그 학교에서도 학내 분규가 터졌다. 학교 교장과 교사 간의 갈등이 알려져 큰 파란이 일어 많은 이들이 상처를 안고 학교를 떠났고, 아직 남아 있는 이들 또한 상처를 봉합한 채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그 상처를 감당하며 거기 있을 수 없어 학교를 나온 경우였다.

그 후 우리 가족의 일상은 180도 달라졌다. 아이가 공교육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며 집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취미로 치던 피아노에 몰입하더니, 대학에 간다면 음악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음악을 전공할 아이의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어 걱정되었지만, 우리는 아이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일반 공교육에서 대안학교로 옮길 때만 해도 ‘어린이’여서 부모의 개입이 컸지만 이제 15세 청소년이 된 아이의 의지를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내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식생활이다. 홈스쿨 하는 청소년에게 삼시 세끼를 차려내는 일은 그야말로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일이었다. 급식비만 내면 저녁까지 해결하고 오는 아이여서 너무 편했는데. 이제 매 끼니 5대 영양소 골고루 갖춘, 급식 정도의 반찬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급식비로 내던 돈으로는 감당 안 될 정도의 쌀값과 부식비를 대려니, 왜 그리 공교육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공교육 후엔 사교육에 의지하는 학부모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깨닫고 있는 중이다. 소수의 생활방식을 선택한 이들은 그만큼 감당할 것이 크다. 실천적 과제도 많지만 사회적으로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는 감당할 수 있는데. 매일 새로운 반찬을 하는 것만은 너무 벅차다. 우리 자랄 때 4남매의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마다 도시락을 여덟 개씩 싸시던 우리 엄마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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