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호두 투병기(2)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26개월 된 강아지 호두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수술을 시키기 위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가든지, 비스테로이드계 진통제를 처방받다가 약이 안 들으면 강력한 스테로이드계 진통제로 바꿔 약을 먹이는 것.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 MRI는 의료보험 적용도 안 되어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왜 그런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개에게는 말로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없으므로 전신마취를 한 후 MRI 관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청소년이 된 우리 아이 유아 시절. 약을 먹여도 감기가 낫지 않고 오히려 기침이 점점 심해져서 원래 다니던 소아과가 아닌 다른 소아과를 찾아갔을 때, 모세기관지염을 방치해 폐렴으로 발전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그 소아과 의사의 말보다 이 동물병원 의사의 말이 더 참담하고 당황스러웠다. 의사는 보호자에게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전달하고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뿐이지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참담한 보호자는 의사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화살은 보호자 자신에게로 향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좀 더 살피지 못했을까. 크지 않는 아기와 같은, 호두의 말 없는 고통 호소를 왜 그리 몰랐을까.
 
진통제를 받아와 호두에게 투여하자 하루 만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소파 위로 펄펄 날아다니고 장난감 링을 가져와 던지면 물어다 놓는다. 비스테로이드 진통제였는데 다행히 약효가 잘 들었다. 호두는 자기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약효로 일시적으로 통증이 없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저렇게 신나서 놀다니 마음이 더 아팠다. 네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곁에 있기 위해선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못하게 할 나를 용서해 달라고. 천진난만한 아기처럼 쳐다보는 호두의 눈동자를 오래 바라보며 나는 눈물을 삼켰다.
 
말이 안 통하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내 시간을 들여 살피고 돌보는 일, 그것이 ‘사랑’의 기본원칙이다. 이 원칙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유형진(시인),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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