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근 (15) 개성공단에 병원 세우고 땅끝 북한 선교의 꿈 펼쳐

정근(가운데) 원장이 2004년 그린닥터스 관계자 등과 함께 북한의 개성공단에 세워질 병원 부지를 둘러본 뒤 함께 기도하고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겨울수련회에서 서원한 것도 착실히 준비했다. 땅끝인 북한 선교였다. 본격적으로 북한을 바라게 된 건 2004년 평안북도 신의주 용천 폭발사고다. 긴급 속보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린닥터스가 할 수 있는 건 적십자사를 통해 의약품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이때부터 북한을 돕기 위한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그해 여름 개성공단이 건설을 완료했다는 뉴스가 TV에서 나왔다. ‘그린닥터스가 개성에서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긴급회의를 열고 개성공단에 그린닥터스가 병원을 열자는 데 뜻을 모았다. 마침 정부가 개성공단 병원사업과 관련한 제안서를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3개월간 준비한 110쪽짜리 발표 자료를 2004년 9월 통일부에 제출했고 경쟁 끝에 개성병원 운영사업자로 확정됐다.

그해 11월 병원 부지를 보러 서울에서 불과 60㎞ 떨어진 개성 땅을 밟았다. 황량한 북한의 산과 들, 깡마른 북한 사람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2005년 1월 진료를 시작했다. 25평 단층 건물에 차려진 개성공업지구 응급진료소는 이름처럼 병원보다 응급실에 가까웠다. 개성공단 내 남북 근로자들을 긴급 진료 정도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많았다. 북한 당국은 ‘그린닥터스’라는 이름부터 타박했다. 왜 영어를 쓰냐는 게 이유였다. 개성에 갈 의료진을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 의사들이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라는 장소 자체였다. 혹시나 북한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까 싶어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다. 김정용 개성병원장이다. 의사 수급난이 되풀이되자 내놓은 해결책이 단기 파견 대신 1, 2년 단위로 일할 상주 의사였다. 인도에서 봉사하는 김 원장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인도 의료선교사 마무리하시고 북한으로 한 번 옮겨보시라”고 권유했다.

수개월이 지난 뒤 김 원장은 인도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원장직을 수락했다. 2005년 12월 개성병원에서 무보수 봉사를 시작해 2011년까지 2만여명의 몸 아픈 북한 근로자를 돌봤다.

어려움 가운데 기분 좋은 일도 있었다. 단체나 기업은 개성병원을 돕겠다며 의약품이나 의료장비를 지원했고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 항생제 등 약품을 제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개성병원의 가치가 부각된 건 2005년 4월 개성 시내에서 발생한 연탄가스 중독 사고다. 당시에도 연탄은 북한의 주요 난방 연료였지만 고압 산소를 갖춘 곳이 많지 않아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치료할 곳이 없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북측 관계자가 개성병원을 찾아 당 간부가 연탄가스에 중독됐다며 다급하게 치료를 요청했다. 개성에선 개성병원에만 고압 산소가 있었다. 이후 개성시민을 위해 고압산소통 수십개를 가져와 개성 시내에 보급했다.

응급진료 외에도 매월 한 두 번은 특별 외래진료를 실시해 남북협력병원 개설을 위한 토대도 마련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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