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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과 중국을 주인공으로 하는 배터리산업 이야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SK그룹관 관계자가 탄소 감축 기술이 적용된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엔진에서 리튬 이온 배터리로 가동되는 전기모터로의 전환은 카를 벤츠가 처음으로 가솔린엔진을 만들었던 19세기 말 이후 교통 분야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다.”

자동차 산업의 전기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테슬라의 첫 번째 전기자동차인 로드스터가 출시된 2008년, 전 세계 전기자동차 판매량은 10만대에 불과했다. 2022년 전기자동차 판매량은 930만대까지 성장했다.

전기자동차의 심장이 배터리다. 배터리의 미래는 전기자동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배터리는 석유를 대체하고자 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원유의 약 79%가 자동차와 비행기, 선박의 연료로 쓰인다. 앞으로 이들의 동력으로 석유 대신 배터리가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배터리의 가능성이 얼마나 큰 지 가늠할 수 있다. 이미 전 세계에서 200여개의 전기비행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전기화물선, 전기잠수함도 만들어지고 있다.

금융서비스 기업 S&P글로벌의 배터리 분야 수석 애널리스트인 루카스 베드나르스키가 쓴 ‘배터리 전쟁’은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불리는 배터리 산업을 세계적 시각에서 조망하게 해준다. 리튬과 중국을 배터리 산업의 두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엮어냈다.

리튬은 배터리의 핵심 광물이다. 2차전지 배터리의 주요 부품은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인데 그중 핵심은 용량과 전압을 결정하는 양극재다. 리튬은 어떠한 종류의 양극재든 반드시 들어가는 유일한 금속이다. 휴대전화 배터리에는 리튬이 5g 정도 들어가고, 전기자동차 배터리에는 30㎏에서 60㎏까지 필요하다.

문제는 리튬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배터리 산업을 이해하려면 리튬의 지정학을 봐야 한다. 석유시대가 중동을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게 만들었다면 배터리 시대에서는 남미가 그렇게 될 수 있다. ‘리튬 삼각지대’라고 부르는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리튬 8000만톤 중 4700만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리튬, 코발트, 흑연 등 배터리 광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업과 정부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는 남미 국가들이 리튬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실제로 칠레의 SQM(칠레화학광업협회)은 국제 리튬 시장의 30%를 차지하며 제2의 사우디아람코(사우디 국영 석유회사)로 성장 중이다.

세계 배터리 산업은 아시아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독보적이다.

“석유 산업의 역사는 미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서구 세계와 중동을 중심으로 흘러왔다. 반면에 리튬 산업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선두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 한국, 일본이 리튬 이온 배터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다.”

중국의 전기화 혁명이 전기자전거에서 시작됐다는 건 흥미롭다. 전기자전거가 성공을 거두면서 배터리 수요가 증가해 관련 시장이 확대됐고, 이후 중국이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강대국으로 변모할 수 있게 한 자본도 축적됐다.

책은 중국의 전기자동차·리튬 산업 현황과 지원책, 간펑리튬이나 톈치리튬 같은 중국의 주요 리튬 기업들의 성장사, 세계를 무대로 한 중국의 리튬 확보전 등을 상세하게 다룬다. 중국의 리튬 개발사를 보면, 그들이 신장위구르를 포기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자원임을 알게 된다. 중국 최초의 리튬 채굴·가공 회사가 설립된 곳이 신장이다.

중국의 경쟁자들인 한국, 일본, 미국, 유럽의 움직임도 소개한다. 한국과 일본은 리튬 산업에서는 중국에 뒤처져 있지만 배터리 공급망에서 무척 탄탄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유럽은 자동차 강국이면서도 배터리를 경시해왔다. 유럽에 배터리 공장을 처음 지은 건 한국 기업들이었고, 유럽 배터리 생산 업체로서는 유일하게 스웨덴의 노스볼트가 2021년 가동을 시작했다.

미국은 그간 배터리 산업에 대한 투자가 뒤처져 있었지만 정부가 최근 변화를 위한 부양책을 내놓았다. 완제품은 물론이고 배터리를 이루는 부품과 물질 모두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에서 만들도록 한 내용이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에 포함됐다. 저자는 이로써 “미국에서 셰일 혁명에 비길 만한 배터리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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