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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성 작가] 구원 받기에도 살아가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 절망의 시간에서 영원의 시간으로

게티이미지뱅크










“주님, 제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제힘으로는 더 이 괴로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제가 처해 있는 시간은 이제 삶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저는 무거운 살과 피를 지니고 그런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25시, 그야말로 구원을 받기에도, 죽기에도, 살아가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실로 모든 것이 너무 늦었습니다.”(‘25시’ 중)

루마니아의 작가이자 성직자였던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사진)는 생애 동안 한국을 세 번이나 방문해 한국인들에게 다소 친숙한 이름이다. 그가 한국에 남다른 관심을 두었던 이유는 한국이 그의 조국인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잦은 외침(外侵)에 시달렸으며 분단된 국가라는 데 있을 것이다.

게오르규는 극한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작품을 통해 인간성 회복의 길이라고 역설했고 그것을 동양의 정신문화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장편소설 ‘25시’(1949년)에서 동양적 인간상인 요한 모리츠를 등장시켜 기계문명에 항거하는 처절하고 끈질긴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줬다. 그가 당시 말했던 ‘25시’는 한마디로 인간성 부재의 상황과 폐허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는 소설 속에서 ‘25시’를 이렇게 묘사한다.

“25시는 인류의 모든 구원이 끝나버린 시간이라는 뜻이야. 설사 메시아가 다시 강림한다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시간인 거지. 최후의 시간도 아닌, 최후에서 이미 한 시간이 더 지난 시간이지. 서구 사회가 처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25시야.”

‘25시’를 읽으면 13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수용소로 끌려다니며 고통을 당한 소박하고 순수한 농부 모리츠가 겪어야 했던 수난이 너무 가혹한 것에 절망을 느낀다. 또 그의 불행이 가중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신과 운명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저항감을 느낀다. 모리츠는 테마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이며, 트라이안 코루카는 현대인의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는 소설의 핵심 모티브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작가는 트라이안에게 자신의 사상과 영성을 그대로 투영했다.

모리츠는 루마니아의 평범한 농부이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그의 아내를 탐내는 헌병에 의해 유대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강제 수용소로 압송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아무도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 루마니아인이란 것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헝가리로 탈출하지만, 그곳에서는 적성국 루마니아인이라며 모진 고문을 당하고 포로로 감금된다. 포로가 된 모리츠는 독일로 끌려가 전쟁노무자로 일한다. 그곳에서 혈통연구가인 독일군 장교 눈에 띄어 얼떨결에 게르만족의 순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인정받아 포로 감시병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모리츠는 기회를 틈타 프랑스군 포로를 데리고 연합국 진영으로 탈출해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전범으로 분류돼 수용소에 갇힌다. 전쟁이 끝나고 천신만고 끝에 석방돼 가족과 재회하지만, 그는 다시 18시간 만에 감금된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동유럽인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13년이란 세월 동안 모리츠는 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아무도 모리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이 원하는 분류법으로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다. 그렇게 모리츠는 구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25시’를 살아야 했다. 도대체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무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시간을 살았다. 모리츠가 자유를 억압당하고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잔상으로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게오르규가 ‘25시’를 집필하게 된 내면의 동기는 부모로부터 받은 인간 존엄 사상에서 출발한다. 그는 부친에게서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살도록 창조됐다고 배웠고 이 생각은 평생 그의 작품의 바탕이 됐다.

그는 소설 속 트라이안을 통해 작가는 ‘잠수함의 흰 토끼’ 같은 시대적 예언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잠수함은 이산화탄소를 측정하는 장비가 부족했다. 이런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후각이 민감하고 공기 변화에 빠른 반응을 보이는 토끼를 싣고 다녔다고 한다. 산소가 부족해 토끼가 죽으면 선원들은 앞으로 대여섯 시간밖에 생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함장은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인간은 모두 질식할 운명에 놓여 있지만, 그들은 아직 그걸 느끼지 못하지. 그들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고 있소. 내가 타고 있던 잠수함의 승무원이 지독히 탁한 공기 속에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들은 토끼가 죽은 뒤 여섯 시간 동안은 살 수 있지만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소.…토끼가 죽은 뒤 인간은 최대한 여섯 시간밖에 살 수 없으니까 내 작품은 나와 가장 친한 사람들의 마지막 여섯 시간을 그리는 거요.”(‘25시’ 중)

게오르규 가문은 조상 대대로 사제를 지낸 성직자 집안이다. 그의 아버지 콘스탄틴 게오르규 역시 그리스 정교회의 사제였다. 그리스 정교회는 신부들의 결혼을 허용한다. 그의 가문은 수백 년 동안 무산계급을 돌보는 성직자로 살아 한 번도 넉넉한 생활을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당연히 신부가 될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학비가 없어 신학교에 갈 수 없게 됐다. 장교가 된다는 조건으로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는 왕립 키시네프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는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는 고통이었다.

“나는 단 한 순간도 꿈에서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내 아버지처럼, 내 할아버지처럼, 내 모든 조상처럼 아무리 암울한 시대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게 될 줄 알았다. 나는 우리 가계에서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거룩한 사제직의 사슬을 끊은 단 한 명,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거부당했다고 스스로 말했다.”(자서전 ‘25시에서 영원으로’ 중)

그는 졸업 후 고학으로 부쿠레슈티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진학해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재학 시절 틈나는 대로 써 놓은 시를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무렵 국회의장의 딸이자 변호사인 예카테리나 부르비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1939년 8월 24일 결혼했으나 일주일 만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당시 루마니아는 독일의 동맹국으로 연합군에 대항해 싸웠다. 징집 영장을 받은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혼자 남겨둔 채 전장으로 나간다.

그는 전투병으로 전장을 다녔지만 시작(詩作)의 붓을 멈추지 않았다. 루마니아 수상 아르만드 칼리네스코가 친 파시스트들에 의해 피살되자 격분한 그는 ‘아르만드 칼리네스코’라는 저항시를 발표했다. 이 일로 그의 시집은 모두 소각됐으며 모든 저술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전쟁의 온갖 참상을 목격하며 군 생활을 마친 게오르규는 제대 후 문필 생활에 전념했다. 1940년 24세의 나이에 게오르규는 시집 ‘눈 위의 낙서’로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시인 최고 영예인 ‘왕국 시인상’을 수상하고 외무부 문정관으로 임명됐다. 이후에도 ‘제2의 찬스’ ‘혼자 떠도는 사내’ ‘기적을 구걸하는 사람들’ ‘가죽 채찍’ 등을 발표하면서 유명 작가로 위치를 굳혔다.

1944년 8월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세워지자 그는 아내와 함께 독일로 망명했다. 그러나 독일이 패하고 연합군과 소련군에 점령되자 부부가 함께 체포돼 수용소에 감금당하는 고초를 겪는다. 그들이 연합군의 적성국가인 루마니아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2년간 포로 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후 게오르규는 1948년 다시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다. 파리에 정착한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한 소설 ‘25시’를 출판한다. 1949년 5월 ‘25시’가 프랑스어로 출간되자 세계는 충격을 받는다. 주인공의 ‘25시’는 2차 세계대전을 지나온 바로 그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25시’는 1963년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서품을 받는 계기를 마련, 문학뿐 아니라 종교에 있어서 지도적 위치를 확고히 만들어 주었다. 말년에는 파리의 조그만 성당에서 사제로 봉직하면서 부인과 단출한 생활을 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정치소설을 주로 써 ‘불의를 심판하는 정의의 실현자’로 불리기도 한 게오르규는 약소민족이 겪어야 하는 고난을 생생하게 묘사한 ‘25시’를 통해 한 국가, 한 민족이 겪는 고난뿐 아니라 전 인류가 멸망에 직면해 있음을 지금도 예언하고 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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