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이지 않는 가치’ 논의할 때… 기부 뜻 드러나도록 설계를”

최근 서울 종로구 한국모금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황신애 상임이사. 그는 한국외대를 시작으로 재단법인 서울대학교발전기금, 건국대, 월드비전 등지에서 모금 전문가로 활동했다. 황 이사는 “유산 기부 문화가 확산되려면 상속세를 비롯한 각종 세제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최근 서울 종로구 한국모금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황신애(49) 상임이사는 인터뷰 내내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강조했다. 유산 일부를 세상을 위해 내놓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유산 기부 이슈를 다룰 때 돈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잘못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부모는 조상에게서 어떤 가치를 물려받았는지 자녀에게 설명하고, 자녀에게 그것을 계승하는 일. 이런 것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황 이사는 ‘국내 1호 고액 펀드레이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모금 전문가다. 1996년 한국외대 교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9년 이 대학 모금 관련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 모금 전문가의 삶을 살게 됐다. 예비 기부자의 망설임을 확신으로 바꾸면서 기부금이 구현할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 그의 일이다.

황 이사는 국민일보와 월드휴먼브리지가 함께 벌이는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 캠페인에 대해 거침없는 조언을 쏟아냈다. 한국 기부문화의 현주소도 들려줬다. 다음은 일문일답.

-펀드레이저로서 터닝 포인트가 된 순간이 있었다고 하던데.

“아마 2000년, 혹은 그 이듬해였을 것이다. 모금 컨설팅 회사인 도움과나눔의 최영우 대표님 강의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즈음 모금 관련 업무는 의미는 있는 듯하지만 조직에서 홀대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강의에서 해외 사례들을 들으면서 이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한국의 기부문화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데이터가 다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정확하게 말하긴 힘들다. 확실한 것은 ‘좋은 기부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기부라는 게 타인을 돕겠다는 마음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다. 즉, ‘좋은 기부자’라 함은 선한 동기로 기부에 참여하면서 기부금 기탁 업무를 맡는 단체와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이를 가리킨다. 기부금의 전체 규모도 늘었다. 하지만 한국인 전체를 놓고 보면 기부에 참여하는 사람의 비율이 너무 낮다. 이 말은 기부하는 사람만 한다는 것, 목돈을 내놓는 사람만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고액 모금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들었다. 비결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난감하다. 혼자서 거둔 성과가 아니다. 모금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기부금이 필요한 곳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돈부터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게 최악이다. 기부에 뜻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정확하게 소통하면서 이런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기부금으로 하려는 일을 예비 기부자가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와 예비 기부자의 기부 동기가 비슷한가’…. 이런 물음에 정확한 답을 얻으려면 우선 상대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다음엔 기부의 뜻이 정확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아주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유산 기부 캠페인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문화다. 한국사회에선 죽으면 재산을 자식에게 넘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만약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그 집안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나쁘다는 식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이런 오해를 받기 싫어서 기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국사회도 이제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세아기 캠페인은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캠페인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데.

“크리스천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위로만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언젠가 가게 될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아기 캠페인에 동참하는 많은 교회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상대로 이런 관점에서 유산 기부가 갖는 의미를 설명해줘야 한다. 천국을 준비하면서 이 땅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아기 캠페인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의 기부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크리스천이다. 기독교 신앙이 있는 사람이 ‘기부의 주류’라고 할 수 있다. 하늘에 소망이 있는 사람은 유산 기부에도 뜻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잘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자녀인 것으로 들었다. 신앙이 모금 업무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뭔가.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 그것의 90% 이상은 신앙 덕분이다. 나는 내 삶이 예배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모금 전문가는 굉장히 좋은 직업이다. 많은 사람에게 선한 일을 소개하고 그 일이 잘 이뤄질 수 있게 거드는 일이니까. 기부를 통해 선한 일을 실천에 옮기면서 마음도 덩달아 선해지는 사람을 자주 봤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을 보면서 하나님에 관심을 갖게 될 때도 있었다. 하나님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특별취재팀

박지훈 최경식 신지호 기자, 조재현 우정민 PD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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