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법의 통치와 법조인의 통치



법의 통치는 민주 사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 중 하나인데, 사람의 임의가 아닌 법이 모든 구성원을 공평하게 다스리는 상태를 말한다. 법의 통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나라처럼 정의와 공평을 계속 지향하는 법과 체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법의 내용이나 적용에 관해 생기는 이견과 갈등을 조정, 합의, 협상하거나 법을 변경하는 절차도 포함된다.

또 법이 모든 것을 일일이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법을 정당하게 해석하고 적용해 통치행위를 할 사람들도 필요하다. 이 사람들이 착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 제도는 개인의 선함이 아닌 시민의 일반적 합리성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누가 통치하건 그를 의심, 견제, 감시하는 장치를 마련해 둔다. 긴 설명이 필요한 법의 통치에 비해 법조인의 통치는 단순한 현실 묘사다. 정당한 절차만 따른다면 법조인뿐 아니라 군인, 기업인, 학자, 배우 출신도 모두 통치 임무를 맡을 수 있는데, 우연히 법조인 출신이 그 직에 많이 임한 경우다.

민주 사회의 시민이 정의로운 법의 통치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법조인의 통치를 바랄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오히려 법조인의 통치는 약간 부담스럽다. 법의 통치를 위해서는 법 해석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복잡한 법을 잘 아는 사람이 그 법을 가지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법조인 출신이라 해서 남들보다 더 정의롭지는 않기에 이들이 통치 임무를 띠고 권력의 자리에 앉으면 훨씬 더 날카로운 의심, 견제, 감시가 필요하다. 물론 법조인만 감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군인, 기업인, 학자, 배우 출신이 통치 임무를 맡으면 또 다른 방식의 경계가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법의 통치와 법조인의 통치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상당한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법조인은 특별한 대우를 받고 부러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법에 대한 존중과 기대는 약하다. 일반인들은 법조인이 그 능력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부정의를 행하거나 그것을 방조해도 막을 길이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법조인들은 그들대로 자신들이 법의 통치를 실현할 특별한 능력이나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고 스스럼없이 의원 출마를 하고 공직에 줄을 선다. 모두는 아니겠으나 많은 법조인이 미래에 입법부와 행정부의 어떤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이 직종의 문화가 왜곡돼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사회나 법의 통치는 완벽하지 않아서 갈등의 순간에 법을 아는 사람이 유리하다. 법을 이해하면 입법과 행정에서도 능력을 보이리라는 기대도 합리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법을 잘 아는 것이 특정 기능의 수행에만 사용되고, 법의 통치에 복무하거나 그 지배를 받는 데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않는 상태다. 그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현실은 비판과 교정의 대상이다.

20대 대통령, 21대 국회의원 여섯 명 중 한 명, 여야의 지도부와 새 정부의 주요 임명직 공무원과 기관장 다수가 법조인 출신으로 채워졌다. 그 상황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매일의 뉴스가 일반인에게 낯선 법령, 시행령, 당헌 당규의 자구에 대한 다툼과 그 해석에 따른 처벌 이야기로 채워지니 법조인의 지배가 심화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게 된다. 납득하기 어려운 법조인 출신의 ‘능력’ 운운이야 어느 집단에게나 조금은 필요한 정신 승리로 받아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능력 중에 민주주의에 대한 작은 이해가 포함된다면, 이제 법조인의 법 해석 기술과 법의 통치를 구현할 신성할 의무를 구분하면 좋겠다.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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