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주문을 잊은 식당’이 교회에 생긴다면

경증 치매인 ‘깜빡 4인방’ 최덕철 장한수 백옥자 김승만(왼쪽부터)씨가 지난 4월 ‘주문을 잊은 음식점 2’ 촬영지인 제주도에서 손을 맞잡고 함께 걷고 있다. KBS제공




평일 저녁 TV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시선을 사로잡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KBS1TV에서 방영된 ‘주문을 잊은 음식점 2’로, 제주도의 한 음식점에서 경증 치매 환자인 ‘깜빡 4인방’이 주문을 받고 서빙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깜빡 4인방 가운데 가장 시선을 끈 것은 김승만 목사였다. 과거 목회자로 활동했고 현재 최은순 사모와 부산 김해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그는 지난해 59세 나이로 조발성(초로기)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았다.

방송 이후 만난 최 사모는 “방송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혹여나 치매 걸린 우리 목사님을 보면서 믿음 약한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흐려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앞섰습니다. 하지만 치매 환자에 대한 따뜻하고 평등한 시선들이 우리 사회에 더욱 많이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출연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목회자가 보여주는 삶과 말의 무게를 잘 알기에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밝히고 방송 출연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사모님의 고된 마음이 느껴졌다.

깜빡 4인방의 도전은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기 어려웠던 치매 환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들은 낯선 환경에 당황해 갑자기 자리를 뜨기도 하고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나 테이블의 숫자나 위치 등을 깜빡깜빡 잊곤 했다. 그때마다 이연복 셰프, 개그우먼 송은이 등 ‘서포트 드림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이곳은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란 타이틀처럼 주문을 깜빡해도 음식이 잘못 나와도 웃음으로 무장 해제되는 마법 같은 공간이기도 했다. 손님들은 조부모님, 또 마음속에 자리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괜찮아요” “애쓰셨어요”라는 말로 이들을 응원했다.

놀라운 것은 방송 회차를 거듭할수록 깜빡 4인방은 손님을 안내하고 주문받고 서빙하는 일을 척척 해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달라진 변화를 지켜보며 치매 환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소통하는 일상을 보내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는 치매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더없이 외로운 시간이었다. 치매 환자들의 인지능력 유지를 위한 교육이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치매 환자 가족들의 숨통을 터주던 데이케어센터도 멈췄다. 외부와 단절된 생활과 고립이 치매 환자들의 인지 및 감정에 부정적인 효과를 안긴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70~2018년 한국의 고령화 비율 연평균 증가율은 3.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가장 높았다. 고령화 비율이 늘어날수록 한국교회의 치매 교인 비율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의 성도 친구 이웃들의 가족 중에는 치매 환자가 없는 이가 없다. 하지만 교회공동체와 예배의 자리에서는 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치매 성도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예배하고 교제하고 있을까.

우리에겐 치매란 병에 대한 불편함이 존재한다. 함께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혹 치매로 인해 생길 번거로운 일들에 대한 거부감이 그들을 예배의 자리, 성도의 자리에서 고립된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주문을 잊은 식당은 교회 안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교회 식사 시간에 식당과 카페를 활용해 알츠하이머 성도가 서빙을 하고 이들을 돕는 서포트 드림팀 봉사자들을 세워 따뜻한 공감과 연대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이제 우리는 치매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치매 환자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교회공동체가 먼저 치매 환자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고 그들의 사회성을 돕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길 꿈꿔본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