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왕상 18:5)

Ahab had said to Obadiah, “Go through the land to all the springs and valleys. Maybe we can find some grass to keep the horses and mules alive so we will not have to kill any of our animals.”(1 Kings 18:5)

악인의 형통이 축복이 아니고 저주인 것은, 그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다가서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합의 삶은 겉보기에 형통했습니다. 그런 아합에게 기근의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아합은 기근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위기는 곧 기회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합은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합니다. 그의 기대는 ‘혹시 꼴을 얻으리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합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지만 결코 해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아합의 신하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로 아합과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는 ‘반드시’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혹시’와 ‘반드시’의 길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현철호 목사(대구 청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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