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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남성 9명이 여성 집단 폭행한 사건에 중국 ‘발칵’

지난 10일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의 한 음식점에서 촬영된 CCTV 영상에 남성 1명이 식사중이던 여성에게 다가가 폭행하는 모습이 잡혔다. 아래 사진은 잠시 뒤 해당 남성의 일행들에 의해 음식점 바깥으로 끌려나온 여성이 집단 폭행을 당한 뒤 바닦에 쓰러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에서 남성 7명이 여성을 집단 구타한 사건이 발생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술집 난투극으로 묻힐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폭행장면이 찍힌 CCTV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중국 네티즌들은 무고한 여성이 한 무리의 남성들로부터 무자비하게 폭행 당하는데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하고 있다.

폭행 영상 일파만파… 당국 “엄중 처벌”

12일 중국 매체 등에 보도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0일 새벽 2시 40분쯤 허베이성 탕산시 루베이구의 한 고깃집에서 천모씨가 식사를 하던 여성 4명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는 여성의 등에 손을 얹고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여성이 뿌리치며 “멀리 떨어지라”고 하자 갑자기 뺨을 때리더니 목을 조르고 주먹을 휘둘렀다. 느닷없이 폭행 당한 여성은 천씨 머리에 병을 던지며 반격했다. 천씨 일행은 싸움을 말리려 자리에서 일어선 다른 여성들도 때리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면 그들은 흰색 티셔츠를 입은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 발로 사정 없이 찼다. 이들은 사건 직후 현장에서 도망쳤다.

그날 오후 중국 SNS에는 ‘탕산 고깃집 폭행 영상’이 급속도로 퍼졌다. 중국 네티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2022년도에 벌어질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이것은 폭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젠더에 관한 일이다” “영상을 본 여성들은 모두 겁에 질릴 것”이란 반응도 많았다. 여성 집단 구타 사건은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에서 종일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피해 여성 2명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장이 커지자 탕산시는 중점업무 조정회의를 소집해 해당 사건의 악랄함을 지적하고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시 전체가 폭력 척결을 위한 특별 투쟁을 전개한다고 선포했다.

탕산시 공안국은 사건 당일 밤 늦게 천씨 등 주요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어 11일 폭행에 연루된 일당 9명을 모두 검거했다. 이들 중 3명은 허베이성에서 한참 떨어진 장쑤성에서 붙잡혔다. 이번 사건은 상급 기관인 허베이성 랑팡시 공안국이 수사하고 있다. 통상 일반적인 형사 사건은 위법 행위가 발생한 지역의 공안이 관할하지만 중대하고 복잡한 사건에 대해선 상급 기관이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만큼 사건 처리에 대한 중국 대중의 관심이 크다는 얘기다.

중국 네티즌들은 폭행 가해자들이 받게 될 처벌 수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중국 형법은 타인을 폭행하고 사회 질서를 파괴한 사람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고의상해죄가 인정되면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량이 무거워진다. 중국 법률 전문가들은 고의상해죄와 공공질서 문란죄가 함께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단 폭행을 방관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고깃집 안팎이 아수라장이 되도록 일이 벌어지는 데도 주변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모습이 더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중국 배우 성룡은 SNS에 “주변에 있던 남성들은 가만히 있고 여성들만 일어나 서로 부축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며 “남성은 여성을 폭행해서는 안 되고 한 무리가 개인을 구타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성 평등 아니라 공공 안전에 관한 것”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잔인한 폭력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며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여성의 권리나 성 평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공안전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또 “가해자들은 법을 무시하고 사회질서와 도덕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깨뜨렸다”며 “신속하고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홍성신문은 이번 일이 주말 시내의 식당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나와 내 가족이 다음 피해자가 될지 누구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어 “겉으로 보기엔 한 사람에 대한 폭행 사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치 사회, 안전한 중국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서방매체인 영국의 BBC뉴스는 이 사건을 전하면서 “중국에서 여성 폭행은 충격적이게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최근 들어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처벌이 강화되고 있지만, 많은 중국인들은 여전히 이번 사건의 가해 남성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는데 그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조직폭력배 배후설도

폭행 사건의 파문은 계속 번지고 있다. 남성들의 폭행이 발생했던 고깃집의 주인은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의 표적이 됐다. 그는 SNS에 영상을 올려 “많은 사람들이 위챗(중국 SNS)으로 전화를 걸고 공격해 정상적인 식당 영업과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동영상 속 싸움을 말리는 검은 옷의 여성이 바로 나다”고 언급했다. 또 “가해자들이 술값을 계산하지 않고 도망갔다. 나도 피해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폭행 가해자들의 배후에 조직폭력배가 있고 이들이 지역 공안과 친밀한 관계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자 탕산시 당국은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 폭력배 단속 업무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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