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10) “원하는 곳에 가라” 축복기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

우크라이나 대사로 임명된 첫 해인 2016년 4월 이양구 전 대사가 오데사를 방문해 이 지역 자랑거리인 오페라 극장 앞 태극기를 단 대사 차량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2015년 11월 하순의 일이다. 주일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했더니 인사국장에게 전화가 왔다. 갑작스럽게 우크라이나 대사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예정에 없던 인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보자는 여럿인데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나를 추천했다고 전했다.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해외 공관장 자리로 생각한 곳은 우즈베키스탄이었다. 그곳에서 대우받으며 마무리할 줄 알았다. 생각할 시간을 요청한 뒤 지인 20여명에게 전화를 돌려 의견을 구했다. 10명 중 9명은 반대였다. 1년 전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등 분쟁이 있었고 전쟁 가능성이 높아 외교관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나 역시 공감했다.

그 와중에 다른 얘기를 한 사람은 딱 두 명이었다. 김도현이라는 외교부 후배는 우즈벡이 골목대장만 할 수 있는 지역 무대라면 우크라이나는 세계정세를 좌우할 글로벌 무대라고 했다. 유라시아를 잘 아는 내가 가는 게 낫겠다고 덧붙였다. 당시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들도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서쪽은 우크라이나, 동쪽은 한반도를 꼽았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책 ‘그랜드 체스 보드’에서 우크라이나 없는 러시아는 절대 제국으로 부상할 수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쪽으로 가느냐, 서방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힘의 균형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도 했다.

나의 외교부 멘토이자 신앙의 멘토셨던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위험이 있는 곳에서 도전하며 섬기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두 사람의 말에 흔들리던 내가 결정적으로 결심을 굳힌 건 전날 있었던 일 때문이다. 사랑의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정현 목사님과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엔 나를 비롯해 외교부 출신 교회 성도들이 참석했다. 인사 시즌을 앞두고 있던 터라 저마다 인사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오 목사님은 나를 위해 “원하는 곳에 가라”며 축복기도를 했다. 축복기도까지 받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대사 제의가 들어왔으니 더 이상 재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싶었다.

우크라이나에 가기로 결심하면서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먼저 외교와 외교관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다음은 강대국의 대외 정책을 파악한 뒤 우리가 생존,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을 찾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양국 관계를 가장 우호적으로 조성해 좋은 사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결과를 놓고 보면 가기를 잘했다. 지정학 개념의 창시자인 할포드 맥킨더는 심장지대 이론(Heartland theory)에서 유라시아를 제패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하고, 유라시아 심장부를 대표하는 나라가 유라시아를 대표한다고 했다. 유라시아 심장부는 동유럽이다. 나는 4000만명 이상의 인구, 유럽에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진 우크라이나가 심장부 중의 심장부(Heartland of Heartland)라는 걸 알게 됐다.

2016년 3월 운명의 땅,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그리고 3년 2개월간 그곳에 있으면서 국제 정치를 협소하게 본 나의 시야는 넓어졌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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