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8) 삼수 끝에 모스크바행… 영적 무장은 하나님의 ‘큰 그림’

이양구(왼쪽)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199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UBF 수련회에서 양마가(가운데·목사) 목자 등과 함께 찍은 사진. 양 목자는 이 전 대사가 UBF고대안암센터에서 성경공부할 때 은사였던 양안나 사모의 남편이자 센터 책임자다.


1993년 모스크바 근무와 함께 시작한 큐티는 한국에서 신앙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한 덕이다. 그전까지 나는 주일에만 교회 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지만 10년 암흑기 때도 신앙에 의지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91년 6월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뒤 새롭게 신앙의 삶을 살게 됐다. 외교부 직원 중 한 명이 나를 외교부 선교회로 안내했다. 매주 수요일 김밥으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종교교회에서 성경공부했다. 설교만 들으면 졸던 내가 성경공부엔 재미를 느꼈다. 외교부 선배가 그런 나를 “성경공부 제대로 하는 곳이 있다”며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로 인도했다. 일대일 과외하듯 성경공부하는 단체였다. 목회자 아내인 양안나 사모가 선생님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고대 안암센터에서 양 사모에게 성경을 배우는 그 시간은 하나님을 내밀히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김동호 높은뜻숭의교회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설교를 들으면서 누군가는 금을, 누군가는 돌을 캐는 데 집중한다고. 긍정의 마인드를 금에 비유한 이 말씀을 통해 목사님은 우리의 삶에 금도 있고 돌도 있는데 금에 집중하는 습관과 안목이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 줬다. 신앙의 슬럼프가 왔을 때면 필요한 걸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절실히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성경공부로 영적 무장을 한 뒤 비로소 러시아로 가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경공부와 러시아행은 하나님이 그린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91년에 한국에 돌아와 1년이 지나면서 재외공관 지원 자격이 생겼다. 러시아어를 배웠으니 당연히 러시아 공관으로 갈 거로 생각했다. 92년 8월 첫 번째 시도, 93년 2월 두 번째 시도에서 번번이 실패하면서 좌절했다. ‘내가 모자란 건가’ ‘서울대 출신이 아닌 육두품이라 그런가’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93년 봄, 또다시 인사가 시작될 무렵 다니엘서를 공부할 때였다. 다니엘서 1장 8절 “뜻을 정하여”라는 말씀을 통해 마음을 굳혔다. 외교부가 아닌 하나님께 인사 청탁하겠다는 결심이었다. 다니엘서 공부를 끝내는 순간 모스크바 부임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니엘서 12장 2~3절은 제 평생 요절이 됐다.

지금은 세 번의 도전 끝에 러시아 공관에 가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삼수를 통해 성경공부할 시간을 주신 게 아닐까.

모스크바에 가니 놀라운 일이 또 있었다. 외교부 선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신 남서울교회 이준호 목사님이 나보다 6개월 앞서 모스크바에 와 계셨다. 이 목사님은 선교의 삶을 살기 위해 모스크바에 오셨다고 했다. 대사관에 성경공부반을 만들고 이 목사님을 모셔 직원, 현지인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했다.

이렇게 삶을 들여다보면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96년 8월엔 프랑스 파리 OECD 발령이 내정돼 축하까지 받았는데 막판에 미국 LA로 가게 됐다. 이 역시 퍼즐 조각 중 하나였다. LA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오정현 목사님을 알게 됐고 이후 한국에 오게 된 나는 지금, 오 목사님이 목회하는 서울 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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