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1) 하나님과 소통의 도구 된 ‘메모’… 인생의 나침반 삼아

이양구 우크라이나 전 대사는 30여년간 메모를 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동시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발견했다. 메모는 1993년 큐티를 시작하면서 메모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메모가 빼곡히 적힌 큐티책.


사람은 각자 자신의 삶에 가장 강하다고 여겼다. 경험의 볼륨만 다를 뿐이지 고통의 순간을 겪으며 스스로 생존 비결을 찾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늘 가진 생각이 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이 살아온 걸 한번씩 정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나 역시도 과거의 기억을 적는 ‘백서’에서 나아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청서’까지 기록해 보고 싶었다. 백서와 청서 그리고 자서전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메모가 습관이 되면서다.

기록의 필요성을 느낀 건 고등학생 때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는데 작심삼일에 그치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터득한 방법이 3일마다 다시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후 힘든 일이 있거나 반성할 일이 있으면 기록했고 글로 쓰면 정리가 됐다.

본격적인 메모의 시작은 큐티였다. 큐티는 2등 서기관이던 1993년 모스크바의 주러시아한국대사관에 부임하면서 하게 됐다. 이후 30년간 이어온 큐티는 영적 습관이 됐다. 큐티 노트에 빽빽하게 메모도 했다. 국제제자훈련원의 리더십핸드북을 보면 세월의 흔적처럼 메모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2012년, 2014년, 2017년….

큐티와 함께 기록의 4단계 원칙도 만들었다. 첫 단계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관찰이다. 여기서 그친다면 사실과 경험을 나열하는 일기일 뿐이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관찰한 걸 해석하는 단계, 해석과 유사한 사례나 경험을 연관시키는 단계,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단계다.

하나님은 4단계를 거친 메모로 뜻밖의 선물을 주시기도 했다. 똑바로 살고 있는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게 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메모는 반성문이 됐고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해 줬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도구가 됐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나 달란트를 메모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외교관이 됐을 때 나는 내가 잘나서인 줄 알았다. 그러다 메모 속 나를 돌아보니 주변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나를 외교관의 길로 이끌었음을 알게 됐다.

2011년 4월부터는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분야별 외교행사, 영성일기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특히 영성일기엔 한국 국가발전과 기독교 역할에 대한 단상부터 2019년 독일에서 열린 유럽코스타에 참석한 소회, 기독교인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 ‘대영광의 그날을 위하여’ 감상문까지 다양한 주제와 소재의 글을 올렸다.

메모는 습관이 됐지만 국민일보로부터 역경의 열매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망설여졌다. 그러다 가끔 모르고 지나쳤던 기억을 발견하게 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확인하게 했던 기록의 힘을 떠올리게 됐다. 역경의 열매를 통해 남은 내 삶이 좀 더 내실 있고 알차게 될 거라는 기대와 설렘도 생겼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는 누구건 간에 거룩함이 있고 기록은 그 거룩함을 꺼내는 일이 되지 않을까.

약력=1959년 출생,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외무고시(18회), 외교부 러시아CIS과장, 국무총리실 외교안보심의관, 중앙공무원교육원 국제교육협력관, 주우크라이나 대사, 현 경상국립대 산학협력중점교수, 현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K블루존 상임대표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