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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하루 두번 양치질·연 1회 스케일링에 혈관도 생생








 
고령·당뇨·흡연 등 위험인자 공유
치아 상실 땐 뇌졸중 확률 2배 높아
일반검진과 구강검진 동시 하면
심혈관 질환 10% 감소… 관계 확인
치과 의사들도 적극적인 역할 필요

A씨(44)는 2년전 잇몸이 안 좋아 대학병원 치주과를 찾았다. 심한 치주염으로 오른쪽 어금니는 빠진 상태였고 왼쪽도 거의 빠지기 직전이어서 순차적으로 잇몸수술을 받았다. 이후 A씨는 실밥을 뽑으러 갔다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해 순환기내과로 진료 의뢰됐다. 검사결과 심장혈관이 많이 좁아진 상태로 곧장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금속 그물망)삽입 시술을 받았다. 의사는 "스텐트를 넣지 않으면 언제든 급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역시 치주염을 앓던 B씨(80)는 치아 파노라마X선을 찍었다가 영상에서 뇌로 통하는 오른쪽 목 동맥이 일부 막힌 경화증을 발견했다. A씨와 B씨는 치과에서 우연히 심근경색과 뇌졸중 위험 징후를 포착한 사례다.

근래 ‘풍치’로 불리는 치주질환(잇몸병)과 심혈관계질환 발생 간 연관성이 밝혀지고 있다. 일각에선 치과의사들이 진료 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사망이나 큰 후유증이 따르는 심혈관계질환을 초기에 찾아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치은염 등 치주질환은 2019~2020년 외래 진료 다빈도 질병 1위일 만큼 국민병으로 통한다. 2020년에만 1637만명이 진료받았고 진료비용은 1조5897억에 달했다. 치은염은 잇몸에만 염증이 국한한 것이고 치주염은 염증으로 인해 뼈(치조골)까지 녹아내린 상태를 말한다.

최근 대한치주과학회 주최로 열린 ‘잇몸의 날(24일)’ 행사에선 심혈관계질환 예방을 위해 구강검진과 칫솔질, 스케일링 등 구강 위생 관리의 중요성이 재차 강조됐다. 아울러 심혈관계질환 초기 발견자로서 치과의사들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다수의 선행 연구들에서 치주질환과 심혈관계질환의 관련성이 보고됐다. 2006년 해외 연구에선 심한 치주질환과 치아 상실이 있는 그룹은 정상인 보다 1.99배 뇌졸중 경험이 많다고 했다. 2009년 국내 연구에선 더 많은 치아상실이 있는 경우 뇌졸중 위험이 10~20% 높게 나왔다. 2012년 미국심장학회(AHA)는 “치주질환과 심혈관질환은 고령, 당뇨, 흡연 등 위험인자를 공유하면서 서로 독립적인 연관성을 갖는다”는 입장을 공식 천명했다.

학계에선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구강 세균들이 전신 혈관을 타고 다니며 독소를 분비해 혈전(피떡)을 만들고 혈관을 딱딱하게 해 ‘죽상경화반(콜레스테롤이 혈관 벽에 죽처럼 쌓여있는 형태)’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한다. 또 구강 세균들이 여러 염증 인자들을 늘려 심장이나 뇌혈관에 동맥경화성 질환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치주과 이효정 교수는 28일 “2020년 실험분자의학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구강과 장내 미생물은 급성 심근경색 환자와 정상인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며 특히 구강 내 세균과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혈전 내 세균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다만 치주질환과 심혈관계질환 사이 인과성을 결론 짓기에는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 치주염 치료가 전신 염증과 혈관내피 세포 반응을 개선해 준다는 연구결과는 있지만 ‘심혈관계질환을 예방한다’는 데이터는 충분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정기적인 구강검진과 양치질, 스케일링(치석 제거) 등 구강 위생 관리가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는 국내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와 주목된다.

이효정 교수와 같은 병원 순환기내과 강시혁 교수팀은 2002~2003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47만8235명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11년간 심인성(심장 기원) 사망, 심근경색, 심부전, 뇌졸중을 아우르는 주요 심혈관계 질환 발생 여부를 추적관찰한 결과를 지난달 ‘임상치주과학저널’에 발표했다. 연구결과 일반 건강검진만 받은 사람들은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그룹 보다 심혈관질환 발생이 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반검진에 더해 구강검진까지 받은 사람은 미검진자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이 10%감소했다. 매년 구강검진을 받는 것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는데 기여함을 시사한다.

같은 연구팀은 앞서 2018년 유럽심장저널에 칫솔질과 스케일링이 심혈관질환 발생에 미치는 영향 관련 논문을 실었다. 2003~2008년 40세 이상 건강검진 수진자 24만7696명을 9.5년간 추적했더니 하루 2회 이상 칫솔질과 연 1회 이상 스케일링을 하는 경우 심혈관질환 발생이 각각 9%, 14%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만에서 진행된 다른 연구를 보면 치주질환을 진단받은 사람들 중에 예방적 스케일링을 받은 이들은 뇌졸중 발생이 22% 적었고, 치주 치료를 안 받은 그룹은 뇌졸중 발생이 15% 높았다. 강시혁 교수는 “건강한 구강 위생 습관으로 심혈관계질환 위험을 상당히 낮출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효정 교수는 “우리 몸, 특히 구강 내 미생물의 수를 줄이는 것이 심혈관계질환을 줄이는데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며, 잇몸병 관리를 통해 전신 질환을 예방하거나 개선할 수 있음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주과학회는 건강한 잇몸을 위해 하루 세 번(3) 이상 칫솔질, 1년에 두 번(2) 스케일링, 사(4)이사이 치간칫솔 사용을 의미하는 ‘3·2·4’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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