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재벌 회장, 반독재·반외세·반자본 외친 민중미술도 모았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신학철 작 ‘한국근대사-종합’(천에 유화, 390×130㎝, 1983). 사진으로 콜라주 작업을 한 뒤 이를 일일이 붓으로 축소·확대해 그리기 때문에 제작에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노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적표현물이라며 국가에 압수됐다가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위탁 보관 중인 신학철 작 '모내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됐다 국가에 기증된 임옥상 작가의 두 작품. 위쪽 ‘두 나무’(캔버스에 아크릴, 139×187㎝, 1981)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 두 나무를 묶어 전혀 다른 국면을 만들어냄으로서 통일의 염원을 형상화했고 아래쪽 ‘김씨 연대기’(종이부조에 아크릴, 121×177㎝, 종이 부조에 아크릴, 1992)는 부조로 만든 한옥 아래 그 집에 살았던 부부가 누워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임옥상 제공




시체더미가 들판처럼 깔려있다. 식민지 질곡을 딛고 일어서며 해방을 맞은 군중이 만세를 부른다. 기쁨도 잠시, 왼쪽에는 미군이, 오른쪽에는 소련군이 진주한 끝에 남북이 갈라진다. 6·25전쟁을 상징하듯 장갑차와 총구, 시신이 탑처럼 쌓여 있고 그걸 다리 삼은 두 남자가 서로 등에 칼을 겨눈다. 4·19혁명의 열기는 5·16쿠데타에 무력화되고 산업화 시대, 미국의 코카콜라와 일본의 야마하 등 외세자본이 겁탈하는 가운데 한반도는 분단 상황을 어쩌지 못한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중층으로 배열되며 회오리치듯 올라가는 흑백 역사화의 맨 꼭대기에선 남녀가 입맞춤을 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상투 튼 남성과 쪽 찐 머리 여성이 백두산 천지와 운해를 이불 삼아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끝에 맞이하는 통일의 그날을 형상화한 이 유명한 그림은 신학철(79)의 '한국근대사-종합'(1983)이다.

이 작품 소장자가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이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신학철은 1980년대 반독재 반외세 반자본을 부르짖으며 현실참여적인 미술을 펼치던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87년 민족미술협의회 ‘통일전’에 출품한 ‘모내기’는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결해 국가에 압수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는 신학철의 이 작품을 소장한 것만으로도 이건희 컬렉션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사후인 지난해 4월 유족에 의해 국가에 기증된 컬렉션에 신학철의 이 작품과 다른 민중미술 대표작가 임옥상(72)의 ‘김씨 연대기’(1992) ‘두 나무’(1981) 등 민중미술 작품 3점이 포함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컬렉터이기 전에 한국 재벌의 상징인 이건희 회장은 어떻게 민중미술작품을 수집하게 됐을까. 사연은 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벽두에 서울 서소문 호암갤러리에서 임옥상 개인전이 크게 열렸다. 전시는 여러 면에서 미술계 화제였다. 아무리 ‘보통사람’을 표방했다지만 군부 출신 꼬리표가 달린 노태우 정부 때였고 여전히 민중미술을 불온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던 시기 아닌가. 그런데 전시에 초대된 임옥상은 전 정권에 의해 불온 작가로 낙인찍히고 나이도 겨우 41세인 신진이었다. 그는 88년 43세로 이곳에서 전시한 한국화가 박대성이 세운 최연소 작가 기록도 깼다.

전시는 당시 이건희 회장의 미술 심부름꾼이자 딜러였던 이호재(68) 가나아트 회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호암갤러리 측이 주저하자 이건희 회장이 교통정리 해 준 것으로 안다고 임옥상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원로 화가 김정헌이 최근 펴낸 회고록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에 따르면 민중미술의 모태가 된 80년 ‘현실과발언 창립전’에 임옥상은 신경호 노원희와 함께 ‘시뻘건 그림’을 많이 내놔 최초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임옥상은 ‘웅덩이Ⅱ’ 등을 냈는데,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붉은색이 핏덩이처럼 낭자하다. 이 그림을 포함해 ‘땅Ⅱ’ ‘땅Ⅳ’ ‘얼룩’ 등 4점이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82년 압수됐다.

“저를 옥죄어온 것은 결국 색깔이었어요. 붉은색을 많이 쓴다, 이건 적화야욕을 꿈꾸는 자생적 공산주의자의 짓이다, 이런 식으로 엮은 거지요.”(임옥상)

당시 언론에 ‘민중 작업 10년의 결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대대적으로 보도된 호암갤러리 임옥상 전시에는 당국으로부터 압수됐다가 돌려받은 그 4점도 포함됐다. 임옥상의 다른 대표 연작인 ‘부조 회화’와 ‘아프리카 현대사 시리즈’가 전시된 것은 물론이다.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나온 임옥상은 석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다. 이전까지 해오던 추상미술에 등을 돌리고 대중과 소통하기 쉬운 구상미술을 선택하고 농촌 현실을 다룬 ‘땅’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주교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시기에는 전통의 현대화를 고민하며 전주 한지를 사용한 종이 부조 회화를 시작했다. ‘김씨 연대기’는 종이 부조로 만든 한옥이 있고, 그 아래 황토색 대지에 그 집의 주인이었던 부부가 누워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 시기에 그린 대표작이다.

84년 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며 미술계에 존재감을 알린 임옥상은 그해 돌연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에선 ‘아프리카 현대사’ 연작을 했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현대사가 제3세계라는 관점에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아프리카 현대사에 한국 현대사를 오버랩하는 작품을 했던 것이다.

귀국 2년 뒤인 88년, 파리 시절의 성과를 모아 가나화랑에서 ‘아프리카 현대사’전을 했다. 호암갤러리 개인전은 그로부터 몇 년 뒤다. 임옥상은 “전시 성과가 아주 좋았다. 민중미술이 사회적으로 공인받고 개인적으로도 제가 미술계 스타로 자리매김한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서 처음 민중미술 전시가 열린 건 그로부터 3년 뒤인 94년이다.

호암갤러리 개인전 성과에 놀란 건 임옥상만이 아니었다. 이건희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이호재 회장은 “관람객이 역대 최대였다. 그걸 보고 깜짝 놀라신 거야. 그래서 ‘민중미술 계통의 대표작을 수집하는 건 어떠시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때 임옥상의 여러 작품과 함께 신학철의 ‘한국근대사-종합’도 민중미술 대표작으로 추천돼 이건희 컬렉션에 들어갔다. 이는 이호재 회장의 안목이기도 하다. 신학철의 ‘한국근대사-종합’은 94년 호암갤러리에서 월간미술 창간 5주년 기념으로 열린 ‘현대미술 40년의 얼굴’전에도 소개됐다. 당시 60대 박서보에서 30대 조덕현까지 작가 20명을 통해 50년대의 앵포르멜부터 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한국 현대미술 흐름을 압축서 보여주자는 전시에 민중미술 간판 작가로 신학철이 임옥상과 함께 초대된 것이다.

신학철은 민중미술 진영에서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홍익대 출신이라 서울대 중심으로 출범했던 현실과 발언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박서보 등 추상화를 하는 교수진 밑에서 미술수업을 받은 그는 졸업 후에는 아방가르드(AG)그룹에서 활동하며 전위미술을 했다. 돌에 사진을 붙이고 막대에 실을 감는 등 오브제 미술을 하다가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켜 여성 잡지 사진을 오려내 사진 콜라주 작업을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비판하는 작업으로 읽혔다. 콜라주 사진을 한국현대사 관련 책자에서 가져오면서부터 자연스레 한국 현대사를 비판하는 작업이 됐다.

그의 작업은 당대 민중미술 전시의 구심점이었던 서울미술관의 문제작가전에 수차례 소개됐다. 그곳에서 전시하며 민중미술 진영과 섞였다. 화가 임세택 강명희 부부가 81년 서울 구기동에 개관한 사설미술관 1호 서울미술관은 유럽의 다다이즘 등 해외 미술을 알리고 임옥상 박불똥 민정기 등 민중미술 작가들을 집중 조명해 주목받았다.

신학철의 한국근대사 연작은 82년 무렵부터 나왔다. 내용은 한국현대사이지만 신군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한국근대사로 에둘러 명명했다. 처음엔 20호, 60호 등으로 작게 그리던 연작은 ‘한국근대사-종합’편에 와서는 캔버스 세 폭을 이어 붙인 세로 390㎝ 대작이 됐다.

이건희 회장이 민중미술 컬렉터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주변에서 저런 험악한 미술을 왜 수집하느냐고 의아해 할 때 이 회장은 “괜찮아, 미술사에 중요한 작품이라면 내겐 필요한 거야”라고 말했다. ‘이건희 컬렉션=한국 미술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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