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 부도 위기 속 만난 하나님 “무너진 장막 일으키리라” 말씀 주셔

김영석 목사는 기도의 목회자다. 눈물의 회개로 성령을 체험한 뒤 항상 부르짖어 기도하며 응답을 받는다.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교회성장연구소에서 만난 김 목사는 “하나님 말씀을 붙잡으면 기적은 일어난다”며 “온전한 순종과 즉각적인 순명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말했다. 신석현 인턴기자


1997년 12월 9일. 김영석 목사(교회성장연구소장)가 평생 잊지 못하는 날이다. 둘째 딸 첫돌이자 부친이 세운 제화업체 엘칸토에 부도가 난 날이기도 했다. 당시 부사장으로 종일 빚쟁이들에게 멱살을 잡혔다. 물론 돌잔치도 못했다. 하지만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날이었다. 김 목사는 모태신앙이다. 부모님 신앙이 좋다고 해서 자녀가 당연히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기도도 못하는 그저 그런 종교인에 불과했다.
 
하나님을 만나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미국 서부 명문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 공부를 마친 김 목사는 엘칸토 공장에서 시작해 영업부서를 거치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1992년 김 목사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브랜드 ‘무크’를 창업했다. 금세 전국 100개 매장에 연 매출 1000억원에 이르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부친과 함께 모기업 엘칸토의 경영도 도왔다. 연 매출 500억원이던 엘칸토는 10년 만에 5000억원 회사가 됐다. 잘하면 1조원 회사도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중장기 계획을 세웠는데 1997년 IMF 사태가 터졌다. 자산은 많았지만 단기 대출금 300억원을 갚지 못해 흑자 부도를 맞았다. 다행히 무크는 그의 개인 회사여서 화를 면했다. 하지만 무크의 매출도 떨어지고 2000년에는 부도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때 엘칸토 직장교회의 사목이었던 진덕민 목사에게 하소연했다. 진 목사는 “지금은 기도할 때”라고 했다. 김 목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면서 기도원으로 안내했다. 20일 작정 기도를 시작했다. 김 목사는 “기도원에서 회개하라고 하는데 ‘착하게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경영도 잘하고 회사가 부도난 것도 나라가 부도나서 피해 본 것 아니냐. 회개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막상 회개 기도를 시작하자 하나님은 내가 이중 가면을 쓰고 있었고, 이기적이고 형편없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보여주셨다. 혀가 꼬이고 방언이 나오며 성령 체험을 했다”면서 “그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났다. 신앙의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마침 기도원에서 한 강사가 아모스 9장 11절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라는 말씀을 주셨다. 지금도 항상 간직하는 말씀이다. 김 목사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셔서 성전을 세울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원래 내 꿈은 더 큰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때부터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됐다”고 말했다. 기도원을 나오면 교회 십자가만 보였다. 교회를 세워야 하니 회사가 부도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도가 나더라도 교회 짓고 난 다음에 부도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부도 위기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

20일 작정 기도가 끝나고 나서도 회사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 ‘다음 주 수요일’이면 부도가 날 예정이었다. 다시 기도원 기도굴에 들어가서 태어나 처음으로 3일 금식 기도를 했다. 부도 예정 나흘 전인 토요일에 첫째 딸 초등학교의 학부형에게 식사 한번 하자는 연락이 왔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벤처기업 대표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회사 상황을 전했다. “얼마가 필요하냐”고 하기에 김 목사는 “20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목사는 당시 ‘뭐하러 물어보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날 밤 11시에 전화가 왔다. 아무 조건 없이 20억원을 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오늘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기다려도 입금이 되지 않자 부도예정일 전날 밤, 다급한 마음에 전화했다. 자산가치가 2조원에 이르는 회사였지만 짧은 시간에 현금 20억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지만 노력하겠다는 답이 왔다. 당일 은행 영업시간이 시작될 때부터 수시로 입금 여부를 확인했다. 결국 은행 마감 직전인 오후 4시30분에 입금됐다. 김 목사는 직원들에게 “살았다”고 소리쳤다. 다음 날 아침 전 직원에게 “오늘부터 우리 회사는 부도났고 제 회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살려줬으니 하나님 회사다”라고 선언했다.

김 목사는 “30대 초반에 1000억원 규모 회사의 사장이 됐고, 하는 사업마다 대박이었다. 내 능력 때문이 아닌데 그때는 내가 잘났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능력을 가져가니까 바보가 됐다. 이후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다

계속 힘든 시기였지만 번듯한 건물을 가지진 못하더라도 교회를 세우기로 했다. 서울 성수동 본사 4층에 창고가 있었다. 정리하고 페인트칠하는 데만도 2000만원이 필요했다. 직원 조회 때 교회 세우자고 했더니 “밀린 월급 3개월 치나 주고 나서 교회 세우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다. “20억원도 만들어주셨는데 2000만원의 기적도 일어나길 믿는다”고. 다음 날 인터넷팀장이 달려왔다. 전날 인터넷 공동구매에 제품을 올렸는데 정확히 2000만원어치가 팔렸다고 했다. 그 돈으로 2000년 12월 30일 직장교회인 우리순복음교회를 세웠다. 김 목사는 “매년 1월이면 매출이 꺾인다. 하지만 이듬해 1월은 매출이 올라갔다”면서 “교회를 세워 막힌 영의 문제가 풀리니 안 좋던 건강도 회복되고 사업도 회복됐다. 영의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너를 원한다” 음성 듣고 주의 종이 되기로 하다

직장교회를 세우고 2001년 어느 날 자정 작정 기도를 할 때였다. 환상 속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모습으로 “내가 널 위해 피 흘려 죽었건만 너는 날 위해 뭘 하느냐”고 물으셨다. 김 목사는 “나 같은 놈 회개하고 성령 받은 건 기적이다. 직원에게 복음 전하고 작은 교회도 세웠다. 더 뭘 원하느냐”고 따졌다. 예수님은 “나는 너를 원한다”고 하셨다. 바로 주의 종이 되라는 ‘부르심’이었다. 김 목사는 이듬해 바로 야간에 한세대 신학대학원에 등록했다.

김 목사는 욕심이 더 생겼다. 엘칸토 부도와 함께 직장교회도 사라진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회사와 완전히 분리된 교회를 원한다고, 더 큰 축복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회사 수익에서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하자 매출도 올라갔다. 성수동에서 합정동으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직장 교회를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며 지역 교회로 만들었다. 그리고 경기도 광주에 빚에 허덕이던 작은 교회를 넘겨받아 이전했다. 하지만 대출금에 이자 부담이 컸던 터라 비용을 아껴 교회 재정에 보태기 위해 서울 본사를 광주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직원들에게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다. 비전을 함께하는 사람 같이 가자”고 했다. 직원의 70%가 함께 갔다. 자연스럽게 구조조정도 됐고 사명을 가진 직원들은 더욱 열심히 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가 위치한 곳이 도시계획 변경으로 ‘노른자 땅’이 됐다. 김 목사는 “주변에 아파트가 서고 학교도 생기면서 갑자기 땅값이 몇 배나 뛰었다”면서 “교회를 세우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까 돈을 주시는 거다. 온전한 순종과 즉각적인 순명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는 것을 체험했다”고 말했다.
 
말씀을 붙잡으면 하나님 역사가 일어난다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신대원을 어렵게 졸업했지만 사업이냐 목회냐를 놓고 결정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사업을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김 목사는 “둘 다 하면 안 되겠냐고, 사업하면 돈을 벌 수 있고 교회도 세우고 목사님, 선교사님을 도울 수 있다고 하며 많이 울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전히 목회만 하라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결국 순종하기로 하고 당시 영업본부장이던 동생에게 회사를 맡겼다. 그 뒤 김 목사는 광주 우리순복음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에만 힘썼다. 이후 김 목사는 홍콩선교에 나서 벧엘순복음교회를 개척한 뒤 여의도순복음교회 사역 후 한세대 교목실장을 거쳐 2012년 광주에서 하남시로 옮긴 우리순복음교회를 담임했다. 이어 다시 홍콩에 여의도순복음구룡교회를 개척한 뒤 현재 교회성장연구소 소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김 목사는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교회성장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목사로서 흔들릴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 홍콩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전도를 열심히 했지만 몇주 동안 성도는 한 명도 없었다. 사탄은 그에게 “영석아 한국으로 돌아가라. 너 돈 버는 거 잘하잖니. 바보 아니니”라고 속삭였다. 그때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김 목사는 “사람은 연약하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하려고 하면 안 된다”면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개척 6개월 뒤 교회 성도는 150여명으로 늘었다.
 
크리스천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를 추구한다

김 목사에게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김 목사는 “비 크리스천은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지만, 크리스천은 눈에 안 보이는걸 추구한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가짜가 많다. 진짜는 눈에 안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짜는 천국이다. 영생 구원 사랑 기쁨이다. 다 눈에 안 보인다. 반면 눈에 보이는 것은 돈 물질 명예다. 한순간에 날아간다”고 설명했다.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이십니다. 진짜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말만 한 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모든 죄를 받으시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영생, 천국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천국 가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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