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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이곳 저곳 아픈 게 내 장이 새기 때문이라고?

게티이미지






가스 차고 먹으면 바로 설사 증상… 두드러기·피부염·만성 피로감도
장 점막세포 손상 세균 등 질병 유발… 가공식품 피하고 유산균 섭취를

30대 직장 여성 A씨는 수 년째 배에 가스가 차고 음식을 먹으면 바로 설사하는 증상에 시달려 왔다.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해 식사 후 마음놓고 산책을 하기 어렵고 출장이나 여행갈 땐 불안감이 컸다. 피부에 두드러기도 자주 나고 늘 피로감을 느껴왔다. 30대 남성 B씨도 두드러기, 가스 차는 증상과 함께 알레르기비염, 아토피피부염을 달고 살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여기 저기 아프고 일상에서 불편함을 자주 느끼고 있지만 큰 이상 소견을 찾지 못하고 약을 써도 딱히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A, B씨는 대학병원 푸드테라피클리닉에서 근본 원인이 ‘장(腸)’에 있음을 알게 됐다. B씨의 경우 식품면역반응검사에서 밀가루와 유제품, 달걀 등에 3등급 이상의 높은 면역반응(IgG항체 양성)을 보였다. 대변을 통한 장내 미생물 검사에서 유해균과 곰팡이의 증가도 확인됐다. A씨 역시 밀가루, 유제품, 달걀은 물론 다양한 채소와 과일류까지 대부분의 식품에 면역반응이 높게 나왔다. 두 사람을 오랫동안 괴롭힌 증상들은 ‘새는 장 증후군(leaky gut syndrome)’에서 비롯됐다고 의료진은 진단했다.

클리닉에선 두 사람의 생활패턴 및 식습관을 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패스트 푸드와 가공식품, 면역반응을 보인 식품 섭취를 철저히 줄이고 발효 식품, 생선, 견과류, 소화효소, 유산균 등 보조제의 복용을 권고했다.
 
장이 샌다고?
A, B씨와 같은 증상을 꽤 오래전부터 경험하고 있다면 자신의 장이 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식생활 패턴이 무너지고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새는 장 증후군은 ‘장누수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장은 음식물 소화, 흡수, 배설의 기본 기능 외에 장 점막이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이나 부산물, 항원, 독소 등이 혈류로 유입되는 걸 차단하는 방어벽, 즉 면역학적 기능도 수행한다.

평상시에는 장내 면역체계와 장내 미생물 및 부산물 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며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길 경우 다양한 질환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장내 면역체계 중 1차 방어벽 역할을 하는 것이 장 점막세포다.

황성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27일 “장 점막세포는 단일 세포층으로 세포 사이 간격은 일정하고 치밀하게 유지되는데, 어떤 자극 혹은 손상이 가해지면 세포 사이 간격이 떨어지면서 장의 투과성이 증가해 장내 독소 등 이물질이 혈류로 들어오거나 반대로 바깥의 이물질이 장 내로 새는 현상이 벌어진다”면서 “다시말해 느슨해진 장 점막세포 틈새로 여러 이물질들이 통과하며 여러 증상과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식 알레르기와 염증성 장질환(크론병, 궤양성대장염), 과민성장증후군, 비알코올성지방간, 간경화, 전신홍반성루푸스, 류머티즘성관절염, 불안장애, 우울증, 자폐증, 만성피로증후군, 아토피피부염, 1형당뇨병, 천식 등 현대인이 겪는 상당수 질병들이 새는 장 증후군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마디로 ‘만병의 근원’인 셈이다.

새는 장 증후군의 개념은 수 십년 전 학계에 보고됐지만 최근 장내 면역체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연구 방법이 발전하면서 광범위한 질환과의 상관성이 밝혀지고 있다.

차의과학대 차움 푸드테라피클리닉 이경미 가정의학과 교수는 “새는 장 증후군이 생기면 독소나 세균 등이 몸 속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데, 체내 면역세포가 이런 외부 물질들을 비정상적 침입자로 간주해 공격을 한다. 이 때 각종 자가면역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황 교수는 “다만 새는 장 증후군은 질병으로 정립돼 있다기 보다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여러 질병들과의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지 주요 원인인지 아니면 결과인지, 해당 질환들에서 새는 장 증후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직 완전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증상 오래 안 낫고 반복되면 의심
선행연구에 따르면 새는 장 증후군의 유병률은 관련 질환에 따라 10~80%까지 보고되고 있지만 국내 공식 자료는 아직 없다. 다만 근래 염증성장질환이나 피부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관련 질병들이 크게 늘고 있는 걸로 미루어 새는 장 증후군 또한 증가 추세일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새는 장 증후군과 연관돼 흔히 호소하는 증상은 모호한 복통과 복부 불쾌감, 소화불량, 가스 과다 배출, 변비, 만성적인 묽은 변·설사 등을 비롯해 식은 땀, 만성 피로감, 무기력, 입맛 소실 등 다양하고 비특이적이다.

이 교수는 “잦은 감기나 느린 상처 회복, 방광염·질염, 관절 및 근육 통증이 관찰되거나 불안, 초조, 우울증, 기억력 감퇴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임상적 증상들이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반복돼 나타나는 사람들의 경우 의심할 수 있다. 새는 장 증후군 판별을 위해선 소변을 통한 락툴로스·만니톨 검사, 장 투과도 검사 등을 받을 수 있다.

새는 장 증후군은 현대인들의 건강하지 못한 식생활, 운동 부족, 스트레스, 의료 행태와 관련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황 교수는 “맵거나 짠 음식, 부패하고 독성있는 물질, 과도한 음주, 만성 스트레스, 소염 진통제, 스테로이드 약물, 항생제, 항암요법 등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면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 과음,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고 진통제나 항생제를 불필요하게 많이 복용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상된 장 점막의 복구를 위해 소화기능과 장내 미생물의 균형 복구가 필요하다. 과민 면역반응(염증)을 일으키는 식품을 제한하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 섭취, 소화가 잘되도록 하는 조리법 선택도 중요하다. 이 교수는 “새는 장 증후군에는 장내에 유해균이 많아지는 ‘미생물 불균형(dysbiosis)’이 동반되기 때문에 장내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을 늘리고 유해균을 억제해야 한다”면서 “유익균이 풍부한 발효 식품을 섭취하고 유익균을 잘 자라게 하는 식이섬유 등 프리바이오틱스의 복용도 도움된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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