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외모 멍에로 고통 받는 아이들… 그 마음 잘 아니까”



가수 인순이가 강원도 홍천에 설립한 해밀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며 환히 웃고 있다. 홍천=강민석 선임기자


상공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해밀학교 전경. 홍천=강민석 선임기자


지난달 26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남노일로 해밀학교(교장 안만조)를 방문했을 때 가수 인순이는 학생들과 한복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내년에 학생들이 입을 생활한복 시연회 자리였다.

인순이는 “그동안 한복을 입고 졸업식을 개최했다. 한복 교복이 결정되면 앞으로 1주일에 한두 번 한복을 입고 등교할 계획”이라며 마냥 즐거워했다.

해밀학교는 가수 인순이가 2013년 강원도 홍천에 강원도교육청 인가를 받아 중등 대안학교로 설립했다. ‘해밀’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로, 다문화가정 자녀와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밝은 희망을 주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다. 국어와 영어 수학 등 교과목 외에 코딩 교육, 농사 체험, 수영 합창 밴드 이중 언어 등 특성화 수업을 진행한다. 이외에 중도 입국 학생을 대상으로 법무부 조기적응프로그램과 한국어 특별과정도 운영 중이다.

아울러 지역봉사와 유적답사, 문화체험 수업을 진행해 지역사회와 소통한다. 졸업생들은 검정고시를 보지 않고 바로 외국어고를 비롯해 인문계고, 패션 농업 기계 간호 등 특성화고로 진학하고 있다.

“어렸을 때 남과 다른 외모가 멍에였어요. 왜 우리 부모님은 함께 살지 못하는가 생각했습니다. 오래 사춘기를 겪었지요. 제가 겪은 걸 토대로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정체성과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학교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해밀학교 설립 이유를 설명하는 사이 인순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인순이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과거 주한미군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며 인순이의 어머니를 만났으나 이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인순이는 정체성 혼란과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제 나이 10살쯤 미국에서 아버지가 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고민 끝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미국에 가족이 있을 것이고 내가 가서 그 가정을 흔들어 놓기 싫었어요. 잘한 건가요?(웃음)”

잠시 숨을 고른 그는 “폐교를 재건축해 학교를 만들었다”며 “아이들이 맨 처음 들어올 때와 다르게 바뀌어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처음에는 선생님을 이기려고 하는데, 점차 마음을 열고 학교에 적응한다”고 했다.

학비는 물론 기숙사비까지 무료다. 입학 대상은 다문화가정·중도입국 청소년, 국내외 초등학교 졸업 및 졸업예정자, 대안초등학교(비인가) 졸업자·졸업예정자(홈스쿨링 포함) 등이다. 특히 단어조차 생소한 ‘중도 입국 청소년’은 외국인 근로자,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 가운데 외국에서 성장하다 청소년기에 다시 입국한 청소년을 말한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이주 배경 청소년이 약 14만 7000명으로, 이 가운데 중도 입국 청소년의 비율은 23%(3만 3000명)이다. 최근 8년간 국내에 거주하는 중도 입국 청소년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2013년에 약 1만명이던 중도 입국 청소년은 지난해 3만 3000명으로 증가했다. 7년 사이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중도 입국 청소년 수가 확대되면서 이들의 정착·성장 문제도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공적 지원은 미비해 소위 ‘청소년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인순이는 “중도 입국 청소년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또 다른 사회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해밀학교는 보다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단법인에서 학교법인으로 변경하기 위해 재정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3억원 모금 목표 중 상록수재단 이사장인 이상춘 부천 상록수교회 장로가 1호 기부자가 됐다. 탤런트 김수미 견미리, 가수 주현미 김상희 등도 후원한다.

그는 머뭇거리다 그간 말하지 못한 고충을 털어놨다. “무상으로 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제 도움이 필요해요. 혼자 힘으로는 버거워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꿈의 터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2시간 남짓 그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여운이 오래 남았다.

홍천=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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