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채찍과 당근’ 이중적 개신교 정책… 개신교 지도자들 ‘선택적 딜레마’에



박정희정권의 이중적 개신교 정책으로 당시 일부 개신교 지도자가 ‘선택적 딜레마’에 빠졌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던 이들에겐 ‘회색지대’가 두텁게 생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이재근)가 6일 ‘5·16군사정변, 박정희정권과 기독교’를 주제로 화상회의 시스템 줌을 통해 진행한 학술 심포지엄에서다. 이중적 정책이란 박 정권을 반대하는 개신교인을 핍박하는 동시에, 정권에 우호적인 쪽에는 제도적 혜택을 준 것을 말한다.

‘5·16과 박정희정권의 종교정책’을 주제로 발표한 강인철 한신대 교수는 “박 정권은 개신교를 억압하는 동시에 적지 않은 특혜를 줘 교세 성장을 도왔다”면서 “이로 인해 1970년대 몇몇 개신교 지도자는 선택적 딜레마에 빠졌고 저항과 협력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회색지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65년 국회조찬기도회와 66년 국가조찬기도회 조직을 제도적 혜택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66년 시작된 경목(警牧)제도와 군경 및 교도소 신자화 운동을 비롯해 목회자의 민방위 교육 교관 위촉, 초대형 대중전도집회 허용·지원도 박 정권이 개신교에 준 혜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혜를 받은 ‘보수 개신교’ 세력은 박 정권을 향한 정치적 지지를 보내면서 ‘정교 유착’ 관계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혜택의 결과는 개신교 인구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70년대 개신교인이 220만명을 넘어섰고 이후 5년마다 400만명, 700만명을 돌파했다”며 “양적 성장의 엄청난 과실은 대부분 보수 성향 교회와 교단으로 귀속됐다”고 말했다.

반면 박 정권은 저항적 교회 지도자와 선교사, 기관 등을 탄압했으며 종교인법 제정 시도를 통해 종교인의 활동도 위축시켰다고 지적했다. 개신교가 독점해 왔던 교도소 선교도 당시 다른 종교로 확대됐다. 강 교수는 “주일에 치르는 입학시험과 국가고시, 예비군 소집으로 주일성수에 어려움을 가중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개신교가 박 정권 기간 ‘특권적 종교’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던 편이지만, 개신교의 제도적 이익을 위협하는 새로운 통제 수단도 작동했던 시기였다”며 “70년대 후반에는 도시산업선교회와 크리스챤아카데미 같은 반정권 기관들이 극심한 탄압에 노출됐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에서는 ‘5·16군사정변·박정희정권과 기독교’(정병준 서울장신대·사진), ‘5·16과 한국 기독교’(강성호 순천시사편찬위원회), ‘5·16과 군사정권에 대한 일본 기독교계의 반응’(이상훈 일본 간사이학원대) 등의 주제도 발표됐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