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에 올라 ‘영원한 기쁨’을 생각하다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구룡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구 양재천변 일대. 타워팰리스 등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수인분당선, SRT가 한데 만나는 수서역이 오늘의 출발지다. 6번 출구로 나와 궁마을 어린이 공원 옆의 수서비전동산을 찾아간다. 수서비전동산은 인근에 있는 수서교회(황명환 목사)의 옛 성전이다. 작고 아담한 벽돌 예배당, 키 낮은 종탑, 푸른 잔디가 깔린 이곳은 주일이면 6곳의 개척교회가 시간을 나눠 예배를 드리는 이른바 ‘공유예배당’이다.

“궁마을 낮은 언덕 위, 주의 자녀들이 모여 함께 예배하고 아버지 품에 안기던 곳, 이제 또 다른 여러 교회가 십자가의 씨앗을 움 틔워가는 인큐베이터(Incubator)의 장소로 그 생명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입니다.”

수서교회는 2015년 10월 지금의 광평로 큰길에 새 성전을 지어 입당예배를 드렸다. 성전 건축비의 10분의 1을 떼어 한국교회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고, 10억원을 탈북민 학교 지원을 위해 헌금했다. 기존에 쓰던 옛 성전은 2016년부터 신앙 공동체로서 첫발을 내딛는 개척교회들에 무료로 개방했다. 임대료가 비싼 강남구에서 개척교회들의 모판 역할을 하겠다는 수서교회 교우들의 의지다. 공유예배당인 수서비전동산과 본 교회인 수서교회, 이 두 교회 사이의 거리는 500m다. 수서교회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아파트 단지 뒤편으로 대모산 등산을 시작한다.

대모산은 해발 293m의 낮은 산이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주민들 일부는 맨발로 산을 오르내린다. 맨발의 산책자들을 보니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는 말씀을 들은 모세가 떠올랐다. 한 시간여의 산책으로 기분 좋게 정상에 오르면 강남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대모산에서 그대로 하산하면 너무 밋밋하다. 능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곧 바윗길이 나타난다. 대모산보다 조금 높은 구룡산(306m)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문득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두 번째 산’이 떠오른다.

브룩스는 이 책으로 2020년 아브라함 카이퍼 상을 받았다.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말하며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삶을 이야기한다. 톨스토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첫 번째 산에 오른 사람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 동료들과 급진적 잡지를 창간하고 글을 쓰며 계몽주의를 퍼뜨렸다. 19세기 위대한 사회파 소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3040 시절 연거푸 완간한다.

그런데 갑자기 맏형 니콜라이가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톨스토이는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이론과 논리로도 형의 죽음을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전의 글쓰기를 미친 짓이라고 여긴다. 인생의 신물을 느낀 그는 첫 번째 산에서 계곡으로 추락한다.

한없는 추락과 고통 속에서 두 번째 산을 만나게 된다.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인생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이 시작된다. 성공이 아닌 성장을, 물질적 행복이 아닌 정신적 기쁨을 추구하게 된다. 이 두 번째 봉우리는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본을 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길이다. 이후 톨스토이는 ‘부활’과 같은 대작을 집필하게 된다.

세계 최고의 기자로 살아온 브룩스는 자신의 가정이 파괴된 경험까지 털어놓으며 두 번째 산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두 번째 산에 올라 도덕적 기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프란치스코 교황, 남아공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 첼로 연주자 요요마 등을 언급한다. 깊고도 따뜻한 사랑과 헌신으로 영원한 기쁨을 발산하는 사람들이다.

구룡산 정상에서 두 번째로 강남 일대 전경을 바라본다. 타워팰리스가 부럽지 않다. 중요한 건 영원한 기쁨을 발견하느냐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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