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아내 엄마 직장인 사모 역할’… 그래서 감사하다

지난해 4월 유튜브 미션라이프 채널에서 제작한 ‘워킹맘 사모’ 브이로그 영상 화면. 23년 차 담임 사모와, 7년 차 부목사 사모가 워킹맘으로 살아가며 회사와 교회에서 겪는 애환과 삶을 다뤘다.




‘째깍째깍’ 수요일이면 퇴근길 발걸음이 빠르고 조급해진다. 예배 시간을 지키기 위해 이날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가까운 분식점에 들러 아이에게 먹일 김밥을 산다. 배낭에 김밥을 넣고 공영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하원 후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며 떼를 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가 결국 어깨에 둘러업는다. 집에는 발도 못 딛고 바로 지하 주차장을 향해 달린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건 뒤 교회를 향해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는다.

‘7시28분, 교회 정문 세이프!’ 다행히 오늘은 예배 전에 도착했다. 예배가 시작되고 스스로 묻는다. ‘나는 지금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며 달려온 것인가. 사람들의 평가적 시선이 두려워 달려온 것인가.’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후자의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건 하나님과의 관계이기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누리기 위해 부단히 애도 써봤지만 ‘사모가 직장 생활하느라 사모 일을 제대로 못 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시선과 평가에 늘 자유롭지 못하다.

무조건적인 희생만 강요하던 과거와 달리 젊은 사모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직장 생활을 허용하는 교회들도 있지만,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사모가 직장 생활을 하면 남편의 목회를 돕기 힘들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섬기고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대부분 여긴다.

사모들도 하나님께 부여받은 달란트로 자아실현에 대한 소망과 욕구가 내재해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가 아닌 주변 환경에 의해 직장을 포기한다. 부교역자 사모들의 경우엔 섬기고 있는 교회의 여건과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몇 년 전 남편이 보수적인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함께 면접을 봤다. 이유인즉 일하는 사모였기 때문이다. “부목사 사모가 직장 문제로 당회에 들어온 것은 70년 교회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는 장로님 말씀에 죄인이 된 듯했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공예배는 잘 지킬 수 있습니까.” 쉴 새 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이날 면접 이후 교회에선 일하는 사모의 행동을 지켜보는 시선이 많았다. 혹여나 남편이 아픈 날엔 권사님들이 “사모님이 일하느라 목사님 잘못 챙겨서 그렇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 탓인 것 같은 죄책감이 들곤 했다.

퇴근 후에 교회로 달려오느라 쫄쫄 굶은 사모의 안부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예배를 마친 뒤 아기 띠를 두르고 교회 밑에 있는 노점상에서 허겁지겁 떡볶이를 먹는 내게 순대를 수북이 쌓아주시던 가게 집사님의 넉넉함이 나를 그나마 미소 짓게 했다.

일하는 사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쉼’이 없는 것이다. 주말에는 남편 없이 오롯이 혼자 육아를 해야 하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공동체 모임과 교제, 교회학교 교사 등 맡겨진 사역을 감당한다. 다시 돌아온 월요일에는 직장인으로 한 주를 시작한다. 직장에서도 목회자 아내라는 시선에 행동과 말에 제약이 따르고, 교회 사모와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담감으로 사모들은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고 억울해도 힘든 일을 감내한다.

이런 고단함 속에서도 사모들은 각자의 소명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직장에서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한다. 직장 동료들과의 교제를 통해 전도에 힘쓰는 한편, 직장인 성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좋은 상담자이자 기도 동역자가 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몰려오던 어느 날 평소 존경하는 원로 목사님에게 문자가 왔다. “아내 엄마 직장인 사모 역할, 일인 다역이어서 버겁지요. 그래서 감사해야 해요. 그 역할이 무척 그리운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감사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은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나를 되돌아보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터에서의 소명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주변에 직장 다니는 사모가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보면 어떨까. 가족이 아닌 성도에게 받는 응원은 일하는 사모에게 더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것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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