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일 기자의 미션 라떼] 영화 ‘불의 전차’ 실제 주인공의 성결한 삶

1924년 파리올림픽 400m 금메달리스트 에릭 리델 선수가 한 육상 경기에 출전해 역주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일본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들의 메달 소식이 연일 들려오고 있다.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처음 열린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지구촌 최대 축제 중 하나다. 모든 올림픽에서는 다양한 이변이 일어난다. 이번 올림픽은 코로나19로 1년이나 연기된 전대미문의 올림픽으로 기록됐다.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도 흔치 않은 장면이 펼쳐졌다. 영국의 유력한 육상 금메달 후보 에릭 리델(1902~1945) 선수가 자신의 주종목인 100m 예선전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주일에 경기가 열리는 게 거부의 이유였다. 그는 “주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저는 그 법을 따를 뿐입니다”라고 말한 뒤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영국 언론은 분노했다.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조국을 버린 위선자”라는 원색적인 제목이 지면을 장식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였다. 그래서 그의 고향도 중국 톈진이다. 이후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그는 달리기에 천부적 재능을 보였고 육상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됐다.

신앙적 소신을 따라 주일 예선을 거부한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평일에 열린 400m 경기 출전권이었다. 하지만 100m 선수였던 그에게 400m는 벅찼다. 경기 관계자들도 리델을 들러리쯤으로 여겼다.

출발선으로 들어서는 리델에게 팀의 물리치료사가 다가가 쪽지를 건넸다. 사무엘상 2장 30절 중 한 부분인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라고 쓰여 있었다.

용기를 얻은 리델은 100m 트랙을 달리듯 전력 질주해 47.6초 만에 400m를 주파했다. 그리고 1등,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200m 경기에도 출전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주일에 예선을 치른 100m 출전을 신앙적 소신으로 거부하고 얻은 수확은 이토록 빛났다.

리델의 삶은 1981년 만들어진 영화에도 소개됐다. 이듬해 54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의상상, 음악상을 석권한 휴 허드슨 감독의 ‘불의 전차’다. 영화 주제곡인 작곡가 반젤리스의 ‘불의 전차’도 덩달아 큰 인기를 끌며 각종 스포츠 경기 중계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리델의 신앙고백은 올림픽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실 신앙인으로서의 실천적 삶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영광을 뒤로하고 자신의 고향 톈진으로 떠났다. 장로교 선교사로서 12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후 산둥반도의 농촌 마을로 들어가 중국인과 어울려 살며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일본군의 총칼이 휩쓸던 때였다.

전 세계 열강도 연합국과 추축국으로 나뉘어 전쟁의 화마 속으로 빠져들었다. 추축국의 일원이던 일본은 중국에 사는 연합국 출신 외국인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수용소에 가뒀다. 리델도 웨이신 수용소에 갇혔고 1945년 2월 결국 생을 마감했다.

수용소에서도 리델은 절망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쳤고 복음을 심었다. 마지막까지 성자와 같은 삶을 살았던 리델이 남긴 울림은 여전히 적지 않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도 믿지 않는 이웃과 다를 바 없이 사는 신앙인이 적지 않다. 리델과 같은 신앙인의 삶을 언제까지 과거의 편린들 속에서만 건져내야 할까. 성서 해석학의 출발점은 말씀을 적용해야 하는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어딘지 살피는 것부터다.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제대로 된 성서해석을 할 수 있어서다. 우리가 선 자리는 어딜까. 어디에 서서 신앙인으로 사는 것일까. 과연 신앙으로 살고 있기는 한 것인가.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없이 사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본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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